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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Jul 06. 2022

겨울평상

애월읍, 그곳에서


희끄무레한 제주의 밤하늘 아래 놓인 평상 하나.

그 위로 나란히 앉은 남녀가.


무릎을 베고 누운 이의 머리결을 손가락 빗으로 쓸어 넘긴다. 말랑하고 살짝 발그레진 볼은 손 끝으로 톡하고 건드려 본다. 똑같이 생긴 두 잔의 머그컵 위로  피어오르는 김은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숨결 틈으로 흩어진다. 윤동주 시인의 싯구처럼 제주의 별 하나하나 유치하게도 이름을 붙인다. 반짝이는 별 한아름 따다 당신의 손에 가득 담아주겠며 그렇게 남자는 유치하게도 속삭였다. 이내 가로등 아래 포개어지는 하나의 그림자와 멀리서 들려오는 제주의 파도 소리만 마당에 고요히 울려 퍼졌다.





‘달그락 달그락’.


바람이 나무 창을 세차게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볼 수는 없었지만 새벽의 한 중간 어디쯤이라 느껴졌다. 바다에서 부터 불어오는 제주의 바람은 숙소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삼십분 정도의 거리. 애월 곽지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농가를 고쳐 만든 숙소이다. 널찍한 문을 열면 바로 나오는 거실은 항상 좋은 냄새로 사람을 맞이한다. 침실의 낡은 창 너머 희미하게 들어오는 가로등 빛은 흰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의 품 속 잠들던 나의 어린 밤이 떠오르는 곳.


창을 살짝 열어 밖을 보니 역시나 새벽 깊은 곳을 부유하고 있는 시간.  다시 잠들기 위해 뒤척여 봤지만 너무 생생하게 꿨던 꿈 때문일까. 다시 잠에 들 수 없어 부엌에서 믹스커피 두 봉지를 뜯어 넣어 뜨거운 물을 붓고 겉옷을 걸치고 마당의 평상에 앉았다.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집 안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요란스런 현관문을 최대한 조심스레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방금 꿈 속에서 보았던 그 평상과 마주한다. 파티를 하자며 조촐하게 몇 개의 맥주와 과자가 고작 이었던 그 날 밤.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누워 어느 해의 크리스마스에 떠오른 별들을 세아리며 보냈었다.


'제주에서 살고 싶어'


지금도 입에 달고 사는 말. 틈만 나면 제주에 가서 살거라 속으로 되내인다. 지칠 때면 언제든 비자의 숲으로 뛰어가 맨발로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당신도 그러하였다. 나와 비슷한 감정의 무게를 가졌다,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제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의 바닷색이 하늘빛과 유독 닮았다 생각했다. 


내가 웃으면 함께 웃는 사람.

내가 울면 나보다 더 크게 우는 사람. 

내가 제주의 하늘이라면 그곳의 바다와 같던 사람.


비어진 평상에 앉아본다. 김이 피어오르는 컵 하나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겨울바다가 결정으로 변한 것 같은 서리를 쓸어본다. 그날 밤 우리가 헤아렸던 별들은 어느새 얼음이 되어 평상위 소복히 내려 앉은 듯 하였다. 뜨겁던 마음이 한없이 식으면 얼음이 되어 제 자리로 돌아온다. 별이 되었던 감정들은 하늘로 떠 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땅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감정을 뜨겁게 빚어 하늘에 올려두었던 밤으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맨 손으로 쓸어본 서리는 날카롭듯 시렸고 녹아 흘러 무심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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