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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Mar 02. 2021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공간의 보통날



사소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그 의미들 틈 사이로 피어오른 위로에 늦은 밤

얼굴을 파묻은 채 웃고 때론 울다 그렇게 잠에 든다.






마음의 상흔은 파인 생채기와 같다. 바다의 바위처럼 표면 어딘가로부터 조금씩 깎여지는 것이다. 조금씩 비워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가난해져 있다. 텅 비어버린 마음의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겨울의 한 중간에 홀로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상실은 다양하다. 모양, 부피, 색깔, 냄새 등 모든 것이 제각각이다. 상실로 인하여 비어진 부분을 무언가로 메꾼다는 것은 참 어렵다. 똑같은 게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대체 가능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메울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고작 덮는다는 것. 발을 잘못 딛더라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덮어둔 것 위로 무언가가 쌓여 단단히 굳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흐르고 흘러 결국 겨울은 지나가게 되어있다. 하나의 계절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날 때 무의식 중 먼저 깨닫는 것은 늘 보던 햇볕의 변화이다. 그렇게 변한 온기가 온몸을 감기 시작할 때, 땅으로부터 조금씩 생기가 생긴다. 그렇게 겨울을 이겨낸 봄 꽃은 유독 멀리 향이 퍼져 나고 잎사귀는 단단하기까지 하다.


봄을 찾고 싶을 땐 제주로 향한다. 공항에서 나와 차를 빌려 비자의 숲으로 향한다. 도착해 힘껏 공기를 마신 후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러다 다시 입구로 돌아왔음에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 때, 발걸음을 돌려 숲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하루를 걷는다. 상실의 겨울이 유독 춥다고 여겨질 때, 제주의 흙을 밟는 것은 봄의 생기가 누락 없이 마음 구석구석에 전달되어 채워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제주로 향하기 전, 공항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의 간극이 좋다. 머릿속의 잡념이 지워지지 않을 때 수영장에 가곤 한다. 물속에 머리 끝까지 잠기면 모든 소음이 끊겨 다른 세상에 머무는 것 같다. 하늘로 오르는 비행 또한 그렇다. 살아가는 세상에서 떠올라 잠시 떠나는 것. 그 떠남을 기다리는 장소이기에 가끔 그곳을 그리워한다. 


겨울이 지나면서 봄이 오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늦더라도 언젠간 오기 때문이다. 붉은 흙을 밟고 단단한 잎사귀 위로 떨어지는 비 내음을 맡아 봄을 느끼기 위해 제주로 향하는 것. 제주로 가기 위해 파리에서부터 비행기를 타는 일조차 사소하다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어느 날 꿈을 꿨다. 겨울과 봄 사이의 옅은 겨울 햇볕이 무터운 제주의 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베개 곁에 머문다. 베개와 이불은 그 볕의 색을 뚜렷하게 담을 만큼 희고 부드럽다. 잠결에 뒤척일 때마다 몸과 천끼리 부딪히며 바사삭하는 소리 속에는 창 너머 제주의 파도 소리가 간간히 섞여 있었다. 사소한 모든 시간을 닮았다 싶은 사람의 얼굴을 이불 위에 손가락 끝으로 그려보니 이른 봄에도 환하게 피어오른 꽃과도 같았다. 열린 창문에서 들어온 바람에 그렇게 그려진 꽃잎이 흔들린다고 생각한 순간 잠에서 깨었고 날아오르던 비행기는 땅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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