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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Mar 26. 2023

흩날리는 봄

공간의 보통날

창 너머 호수 물결 위로 비친 꽃잎들이 흔들린다. 올해는 유독 빨리 피어오른 벚꽃이라는데.

환하게 피어오른 꽃잎아래 오래전 우리의 나란한 발소리가 겹쳐 들리는 거 같기도 하였다.


체감하기를 옛날 옛적에 라는 말로 시작하는 한 편의 전래동화처럼 말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손으로 헤아려보니 고작 한 손으로 가득 헤아릴 수 있었다.

회를 더 이상 희망하지 않았다. 혹여 그런 순간이 와도 무덤덤하게 지나칠 거라 생각하였다.

우연찮게 혹은 심연 속 희망이 만든 인연처럼 우리는 결국 다시 마주하였다. 다짐은 상상 속에서 그쳤으며 여전히 나는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자각했다.


이 맘쯤이면 집 근처 호숫가 주변으로 벚꽃 구경을 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파리도 정말 사람이 많다 생각했었지만 요즘 느끼는 건 서울에 비할 수 있을까.


파리의 봄은 흩날리지 않는다. 단단하게 피어오르며 그 자리에서 한 동안을 머물다 어느새 여름으로 바뀐다.

찰랑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사월이 되면 너에게 안부를 묻곤 하였다. 이것은 습관처럼 버릇처럼 봄이 되면 무심히 피어오르는 마음의 꽃처럼 향을 가득 품은 채로.

다행인 건 파리에서의 봄은 흩날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머물렀다. 들뜨지 말아야 하는 감정은 손에 꼭 쥐고 있다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고요히 강물 위로 흘려보낼 수 있었다.


스치듯 지났던 재회의 시간. 여전히 나는 너에게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외면하고 싶던 마음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한 번 더 너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 이상 그 말을 찾지 못해 우리는 다시 마주하지 못하였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서울의 봄이 흩날린다.

흘려보낸 감정이 어느새 되돌아와 꽃잎 사이에서 나부낀다.

마주한 봄이 어여뻐서 내 곁에 오래 머물길 바라면서도 어느새 여름이 되길 바란다.

고요히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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