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샘솟는 공간 -3
2. 샘으로 흘러온 시간들에서 이어집니다.
Q. 콘텐츠가 있으면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다. 젊은 창작자들끼리의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했나? 샘지기의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오는 건가?
예은 처음부터 잘 모이진 않았다. 처음에는 사장님, 나, 혜진이의 지인들, 그리고 음악 하는 덕수라는 친구의 지인들, 이렇게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잘 모이는 것 같더라.
Q.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주민이 단골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는지, 주로 이용하는 손님들이 어떤 분들 일지 궁금하다.
예은 처음 사장님과 둘이 일할 때는 손님이 정말 없었다. (경민 진짜 없었다.)
사장님이 "예은아, 여기서 일하지 않을래?"라고 제안하셨을 때 "저 두 달 동안 해외여행 가요."라고 얘기했었다. 사장님이 "그럼 문 닫고 기다릴게."그러시더라. 내가 그리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를 신뢰하고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안 뽑겠다니, 감동했었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자주 닫았다고 하시더라.(웃음)
맨 처음에 일 하기 시작했을 때 몇 달 간은 "여기 카페였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사장님이 돈이 많아서 이 공간을 자기만의 방으로 쓰고 있는 줄 알았다"는 반응부터, “여기는 사장님의 사랑방이 아니”냐는….
혜진 야채 가게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예은 잘 열려있지 않았으니까, 사실.)
경민 예전에는 여기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예은 유리창도 없었다.)
예은 '지속성'이 중요한 것 같다. 처음에 행사 한두 번 열렸을 때도 물론 반응은 왔다. "여기 뭐 하는 데예요?"라면서 문 여시는 분도 있고 카페냐, 작업실이냐 질문하시기도 하고. 요즘에는 확실히 이 주변에 숨어있던 청년들과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계속 무언가 일어나다 보니까 청년들이 오시기도 하고, 계속 손님으로 있다가 어느 날 "저 사실 음악 하는 사람이에요"하시는 분들도 조금씩 계신다. 실제로 음악 하시는 분이 아이와 함께 공연에 오시기도 하고, 그분이 단골손님이 되기도 한다.
처음 행사를 열었을 때부터 지역 사람들과 교류를 했던 건 아니다. 사실 아직도 할머니들이나 애기들이 많이 오는 카페는 아니다. 그래도 '청년', '예술' 이쪽으로 계속 행사를 하다 보니까 이 지역에 사는 같은 분야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같다.
Q. 사장님께서 원래도 예술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으셨나?
경민 그렇진 않았다.(웃음) 샘에서 기대하고 바라는 게 셋 다 다르다. 나는 '내 사업'하는 데 관심 있다. 지금도 내 본업은 식자재 유통이다. ‘다음 먹거리’를 고민하다가 카페를 잘 살리면 비전이 있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여긴 꽤 많은 알바가 거쳐 갔다. 그들에게 내가 꿈꾸는, 하고 싶은 것을 얘기했을 때 대부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예은)는 그 얘기를 믿어줬다. 이곳에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그럼 우리 여기서 한 번 같이 해보자.” 하고 시작했다.
이 공간에 예술하는 친구들이 와서 여러 활동을 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나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샘이라는 비즈니스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윈-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가 문화예술인들이 돈을 벌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샘 클래스도 시작한 거다. 여기서 클래스를 해서 고정적으로 수익이 창출될 수 있다면, 그것이 카페 샘 입장에서도 좋을 수 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외지고 누추한 동떨어진 샘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같이 하는 거’다. 그 인식이 서로 있는 거다. 그래서 목적은 다르지만 같이 갈 수 있는 것 같다.
Q. 많은 행사를 해 나가는데 각자 카페 샘을 이끄는 모토가 있나? 궁금하다.
예은 나는 샘에 힘든 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이 가치를 선택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장님의 사업 방식이 그 이유다. 사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정리한 내용은 이렇다. 내가 혼자 꿈을 이루려고 하면 정말 꿈밖에 안 될 수 있지만 꿈꾸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신선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을 잘 꾸는 사람이었다. 가족들도 ‘일어나’, ‘정신 차려’ 말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현실 부적응자'라는 인식이 생겼다. 그것 때문에 더 강박적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나는 느리니까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많이 해야 해'라는 마음으로.
여기 오게 된 것도 제도 안에서 지쳤기 때문이었다. 예술을 하면 그렇게 안 살 줄 알았는데 똑같이 비교하고, 옆 사람이 적이 되고. 예술을 하면, 대학에 들어가면, 대학이 끝나면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대학을 졸업해도, 대학원 가도 마찬가지겠다는 회의감이 들던 시기였다. 사장님을 그때 만났다.
예은 사장님과 같이 일하면서 사장님이 그러셨다. "내가 착해서 네 맘대로 이 공간을 쓰라고 하는 게 아니다”, “네 맘대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나에게도 이득이다”, “나는 굉장히 경제적인 사람이다”, “예술도 안 좋아하고 착한 것도 아니다.”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사장님이 맨 처음에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었을 때는 되게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잠깐 있다 가자' 생각했었다. 한편으로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걸까' 싶었는데, 계속 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어? 내가 바랐던 것도 이거였던 것 같아' 싶은 거다. 우리에게도 살이 붙더라.
혜진이와 같이 보틀팩토리 1)에 갔을 때 내가 엄청 떠들었다. "제 친구(혜진)가 환경에 관심 있다"라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좋았던 것도 있지만 "혜진이가 꿈을 이루는 게 내게도 도움이 된다. 경제적인 일이다"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어서기도 했다. 거기 동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Q. 프로그램이 왕성하게 운영되고 있다. 사장님은 득을 보셨다고 판단하시는가?
경민 그렇다. 아주 많이. 예전에는 동네 사람들도 카페 샘을 몰랐다. 지금은 다들 아시고, 좋아해 주시고 하신다. 모토 얘기로 다시 넘어가자면, 나도 꿈꾸는 걸 좋아한다. 꿈꾸는 사업가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고자 했을 때, 그걸 추진하는 게 어렵다. 나는 결혼도 했고, 식구들도 있으니까 더. 2년 전만 해도 샘이라는 공간은 나 혼자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앵무새처럼 나 혼자 '잘 될 거야' 떠들었다. 지금은 이 친구들(예은, 혜진)이 주인처럼 이 공간을 사랑하고 이 공간에 대해 얘기한다. 그것 자체가 나에게는 가장 큰 감동이다.
Q. 네게 도움이 되는 일이 내게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다.
예은 내게는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서운한 게 생겼을 때 "우리 정말 서로의 꿈을 이뤄주고 있는 것 맞냐”라고 울면서 얘기할 정도로. 내가 착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렇게 착해서 어떻게 하려고'라는 말을 하더라. 사장님과 이야기하면서부터는 '그래. 나는 착한 게 아니라 경제적인 거야' 혼자 생각한다.
지속이 되고 가능만 하다면 아이디어에 살이 엄청 붙을 수 있더라. 그걸 경험을 하고 나니까 더 확고해졌다. 사실 일이 되게 하는 건 혜진이다. 나는 옆에서 계속 말을 던진다. "어, 좋다"하고. 그럼 혜진이가 다시 “이건 어때?”한다. 내가 혜진이한테 이런 부분은 좀 도움이 되겠네, 싶어 행동하면 또 서로 합이 맞고. 그러면서 나도 되게 많이 배우더라. 둘이었으면 못할 일을 한 명이 더 들어오면서 맞춰가는 과정이 힘든 것은 있지만 훨씬 좋은 거다.
예은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지속할 수 있잖나. 혼자서 “나는 이런 꿈을 꿨어”라고 말할 때는 '현실 부적응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꿈을 이뤄가는 방식으로 이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꿈을 돕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고 확장될 가능성도 훨씬 크니까.
혜진 이 지점에 굉장히 동의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사람이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도 없고 꿈꿀 수도 없고 발전시킬 수도 없다. 언니랑 이야기하고 있다 보면 언니가 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준다. 언니는 말만 한다고 하지만,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는 거다. 언니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사람들을 결속시키고 조직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이 사람들과 같이 있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일이 이들과 함께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예은 같이 꿈꾸니까 일도 붙고 가속도도 붙더라. 꿈을 이루는 방식으로 오히려 이게 현실적인 거다. 어떻게 하면 막연한 꿈을 이룰 수 있는지 계속 부딪치면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 이 가치를 인정하고 나니까 잘 못 나가겠더라. 일이 많아서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이게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기꺼이 희생해볼 만하다는 결론이 나더라.
근처에 몇 개 스튜디오가 있다. 젊은 청년 사업가, 초보 사장이 스튜디오와 책방을 차린 건데, 남일 같지가 않은 거다. 같이 있으니까 서로 의지가 되더라. 이웃이 되면 좋겠다, 싶었다. '적이 아니라 이웃'이라면 좋겠다고.
나중에는 찾아가서 "고양이 포스터 뽑았는데 한 장 드릴 게요"하고 앉아서 막 얘기했다. 결국엔 고양이 연주회 때도, 샘 라이브 때도, 취중 토론회 때도 방문하셨다. 이웃이 되고 나니까 의지가 되더라. 파급력도 크고. 서로 SNS로 '근처에 있는 카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가서 얘기 나누고 응원하는 관계가 되고 나니까 내 일처럼 서로의 고민을 나누게 됐다. 샘이 확장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대기업처럼 크기로 확장하기보다는 동네 안에서 '연결'로 확장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인용구로 흔히 쓰이는 "같이의 가치"는 현실에서 꽤 좌절된다. 오직 희생하는 것처럼만 보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한다'는 것이 사실 아주 경제적이고 우월한 가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이들이다. 서로의 꿈에 깊게 공감하고 있기에 너의 꿈을 이루는 것은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샘은 분명히, 뚜렷하게 커지고 있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이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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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샘이 위치한 연희 1구역의 '관리처분 인가' 소식과
샘지기들이 계속해서 가꾸어나갈 카페 샘의 이야기가
<예술이 샘솟는 공간> 마지막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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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샘으로 흘러온 시간들
집필 희지
인터뷰 희지, 서영, 현정
사진 희지, 서영
교정 현정
1) 보틀팩토리는 연희동에 위치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카페다. 텀블러를 나눔 하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제로 웨이스트 마켓 '채우장'을 연다. @bottle_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