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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Sep 27. 2019

그러나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한 켠의 동네로 남은 성북동

<이웃하다>에서 이어집니다.



어려운 이야기라고 했다. 어째서 어려운 이야기일 것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글을 정리하고 게시하는 것이 다시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아닌지를, 어디엔가 도움이 되는 일일지를,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누군가를 상처입힐지도 모르는 글을 게시해도 되는 것일지를,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내가 아닐 것인데 감히 내가 그것을 고민해도 되는 것일지를, 고민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한 달여 전인데, 글을 게시하는 것은 오늘이다. 글을 읽다 마음 다치는 부분이 있다면,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진의를 바로 담지 못하게끔 문장 만진 에디터의 탓이다.


성북동 예술공동체의 한 부분을 이루다가 현재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두 공간, <느낌가게>의 운영자 이종환 기획자님, <갤러리 버튼>의 운영자 함성언 디렉터님과 이야기 나눴다.

 




1층은 가게로 썼고 2층은 집으로 썼습니다
                                                                                                                


Q. 느낌가게에 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느낌가게 문득 창고문을 열다(이하 느낌가게)는 문화 공간이자 카페입니다. 2013년 성북동에서 처음 오픈했습니다. 현재는 명륜동을 지나 원남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느낌 혹은 감성을 소재로 다양한 프로그램 및 모임을 기획 및 운영 중이며 대표 프로그램으로 <나를 만나러 갑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위치(원남동)로 옮겨온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성북동에서 약 5년 있었고 명륜동에는 2년 있었습니다. 2019년 5월 명륜동에서 원남동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약 4개월이 되어가네요. 


Q. 가게를 성북동에서 처음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작업실 삼기 좋은 곳, 조용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성북동에서 다녔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성북동은 넓은 도로, 한적한 거리, 자연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으로 성북동에 있는 공간을 찾았습니다.


주택 한 곳을 얻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장소가 넓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음료를 파는 가게를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회의를 거듭하다가 '느낌'을 보관해보자는 생각을 시작으로 성북동에서 느낌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성북동에서 다른 마을로 자리를 옮기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성북동에서 가게를 운영했을 때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커피와 주류를 판매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가지를 함께 하는 것이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매출은 한정적이었고, 식·음료도 쉽지 않더군요. 성북동 시스템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과 비싼 임대료 문제가 겹쳐 다른 곳으로 가게를 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가게 앞에 건물이 높게 들어서면서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원남동으로 오면서는 식·음료의 비중은 줄이고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가게를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Q. 공간을 옮기면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성격도 변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혹시 운영자님께서도 그 같은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성북동 느낌가게에서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분들이 명륜동 느낌가게에 오셔서는 실망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성북동에서는 독특한 색깔이 있던 가게가 명륜동에서는 예쁘지만 어디에나 있는 가게로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성북동 느낌가게에 오셨던 분들은 문화공간으로 명륜동 느낌가게에 오셨던 분들은 카페나 술집으로 느낌가게를 생각하실 듯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역과 공간이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주거지역(성북동)의 공간과 상업지역의 공간은 손님분들이 느끼는 이미지가 다른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운영자님께 성북동은 어떤 곳이었나요? 혹은 현재 어떤 곳이 되었나요?


추억이 많은 곳이죠. 가게를 운영하던 처음 2년은 1층만 임대했고 그 후 2층까지 통임대했어요. 1층은 가게로 썼고, 2층은 집으로 썼습니다.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는 가족이 되었죠. 좋은 추억입니다.


성북동은 정말 조용하고, 대사관저가 많아서 치안이 좋고, 자연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민과 부유한 층이 섞여 사는 것도 재미있죠. 골목 하나 건너가면 쓰러져가는 집이 있고 또 하나 건너가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아주 큰 집이 있는 거죠.


지금은 차를 타고 지나가는 정도지만, 나중에 노년을 서울에서 보낸다면 다시 성북동을 고민해 볼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매력이 많은 동네입니다.





성북동은 컸지만 '우리의 성북동'은 작았습니다

Q. 갤러리 버튼, 그리고 PSBR(Project Space BUTTON & RAM)에 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갤러리 버튼은 2012년 5월 개관하여 2015년 12월까지 운영된 갤러리입니다.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었지만 문을 닫을 무렵에는 대안적 상업공간 같은 느낌으로 운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목표는 매달 하나의 개인전 또는 2인전을 개최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평균 연 7회 정도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가능한 디렉터와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군(소위 '청년작가'라 지칭되는)의 전시를 개최하고자 노력했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운영은 잘 못 해서 결국 문을 닫게 되었지만…….


PSBR은 2017년 겨울부터 봄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공간입니다. 양재동 람 아트스쿨의 유휴공간을 이용해서 작가들에게 한 달간 작업실을 무상 임대하고 다시 한 달 간 아주 작은 전시공간을 이용해 전시를 진행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1년 운영을 목표로 하였으나 실제로는 4개월 동안 2명의 작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운영 목적은 미술계 내부에서도 인디씬(이라는 정의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것이었고, 두 명의 작가 모두 전시를 바탕으로 전보다 불러주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PSBR도 문을 닫았습니다.  


Q. 갤러리 버튼과 PSBR 사이, 한동안 별도의 공간 없이 프로젝트 단위로 전시를 운영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람 아트스쿨과 함께 고정적인 전시 공간을 얻었던 까닭이 궁금합니다.


기획자로 활동하는 데 있어 안정적인 활동 공간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대관 전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소중한 이유이고, 아쉬운 소리를 하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전시공간이 없는 기획자가 작가들에게 신뢰를 얻기란 무척 어렵다는 믿음도 작용했습니다.


Q. 그러한 공간을 '양재동'에서 찾으셨던 까닭이 있을까요?


람 아트스쿨의 유휴공간이 양재동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북동에 있었다면 성북동에서 시작했을 것이고 청담동에 있었다면 역시 그곳에서 시작했을 겁니다. 단, 몇 가지 지역에 대한 조건은 있었는데 양재동은 그 조건에 아슬아슬하게 부합하는 곳이었습니다. 


Q. PSBR은 갤러리 버튼과 성격이 무척 다른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양재동에 '갤러리 버튼'을 오픈했다면 성격이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PSBR'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 스페이스였고, 운영 방법과 작가, 작품 모두 기존과는 달랐습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달라졌습니다.


Q. 갤러리 버튼을 성북동에서 시작하게 된 계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1996년부터 혜화동에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때문에 갤러리를 오픈한다면 혜화동이나 성북동이 되어야 한다고 (자연히) 생각했습니다.


Q. 긴 시간 일상과 생계, 예술 연계 마을 활동을 성북동에서 꾸리셨습니다. 성북동은 디렉터님께 어떤 곳일지 궁금합니다.


2012년 오픈을 준비하기 시작하고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성북동이 겪은 변화는 거대했습니다. ‘이런 게 여기도 생기는구나’ 하고 놀랄 만한 상업공간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더 많은 작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며, 매우 능동적으로 작가-공간-지역 간 커뮤니티가 구성되기도 했습니다. 부자들이 설렁설렁 그림 쇼핑을 하러 나오기도 했고 먼 데서 성북동에 와, 먹고 놀다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이 오래된 동네는 조용했고, 오래된 것들이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60년 된 중국집 옆에 컬렉트 샵이 공존할 수 있는 곳, 놀랍게도 2000년대에도 낭만이랄 게 있는 동네였습니다. 당시의 성북동은 제가 그리는 서울의 아름다운 미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던 성북동은 없어졌습니다. 


성북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동네인데, 상황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냥 동네가 너무 작아서, 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북동’이라 부르는 동네는 꽤 크지만 ‘우리의 성북동’은 한성대입구역에서 대로변을 따라 1km 정도,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기 직전까지의 작은 동네였습니다. 세상은 너무 작은 동네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공간과 작가들이 겪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행정은 의지를 가졌으나 실상은 유명무실했습니다. 많은 공간과 작가들이 성북동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떠나야 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문제는 다들 가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성북동에도 당연히 생겨났지만 건물 주인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성북동의 예술운동 또는 아트씬을 지키려는 노력은 있어왔지만 개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되려 민관의 노력들이 성북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1km 내외의 작은 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제 저 멀리 북정마을에까지 퍼졌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산동네에도 소비를 위한 상업공간들이 생겨났습니다. 작가들은 다시 밀려날 겁니다. 공간은 섬이 되겠지요. 남아서 악전고투 중인 여러 공간과 작가들에겐 저주 같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카페와 식당이 번지는 속도를 공간과 작가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지금의 성북동은 조금 불편합니다. 머리를 자를 때만 가서, 빵을 사면 돌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요새는 우이동이 참 좋아 보여서 모두 그리로 옮기는 것도 방법이겠다 생각합니다. 그린벨트는 공간과 작가들을 위한 방어선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거기는 공간과 작가들이 모여들어도 건물을 올려서 월세를 높여 받기는 어려운 동네니까요.


성북동 느낌 가게가 있던 곳. 가게의 이름과 벽화가 아직 남아있다. 2019년 8월. (출처 : 에디터 희지)
성북동 갤러리 버튼이 있던 곳. 아래쪽 노란 간판 자리에 갤러리 버튼의 간판이 달려 있었다. 2018년 5월 (출처 : 구글 스트리트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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