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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담 Jan 29. 2019

다르네, 또 다르네.

아빠도 아기 사진이 처음이라...

1.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은 이런 말을 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자네..."


세상에 나와서 모든 것이 낯설 도담이만큼, 아내와 나에게도 출산 이후의 모든 순간들은 낯섦의 연속이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배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는 아내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고통을 출산의 순간 고스란히 느끼는 자연 분만과, 출산 이후의 고통과 후유증이 크다는 제왕 절개를 놓고 아내와 나는 임신 당시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제왕 절개는 출산하고도 한참 힘들다구, 수술대 올라가는 것도 무섭고. 아무튼 자연 분만하고 싶어 나는."


"그러니까 출산의 고통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자연 분만은 체크 카드고 제왕 절개는 신용 카드다, 라는 거지?"


이런 대화를 나누며 킥킥댔던 우리는 결국 신용 카드를 선택해야 했고, 그 후유증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출산 다음 날 조금씩 걷는 연습을 하며 소변줄은 뺐지만 움직이고 몸을 뒤척이는 것만으로도 큰 통증을 느끼는 아내에게 간호사들은 오히려 엄하게 대했다. 자꾸 움직여야 자궁 안에 고여 있는 피가 배출된다는 것. 나도 기본적인 수발을 해 줬지만 움직이게끔 유도하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천천히, 링거대에 몸을 의지해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지만 아내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물론 수술 후라 아직 음식 섭취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가 애써 움직인 이유는 간호사가 강조한 '고인 피 배출' 같은 게 아니었다. 아내는 도담이를 보고 싶어 했다. 하루에 네 번, 3시간 간격으로 있는 면회 시간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을 기세였다.


아침 면회시간을 기다렸다가 함께 신생아실을 방문했다. 아내는 조금 떨리는 듯한 눈치였다. 창가에 붙어 서성이며 도담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예뻤다. 방금 신생아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다고 하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빛내며 유리창 너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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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간호사는 도담이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처음 확인할 때 보았던 아이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던 지난밤의 도담이의 모습마저 온데간데없었다. 부기는 많이 빠지고 얼굴에 홍반도 사라져 훨씬 보기 좋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생아실 대부분의 아기들이 머리털이 없는 것에 비해 도담이는 태어난 지 몇 개월은 된 아이처럼 머리숱이 많았다. 아이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놀라서 도담이를 바라보고 있는 내 감정은 곧 당황으로 바뀌었다. 날 흘겨보는 아내의 시선이 느껴졌던 것.


"이렇게 작고 귀여운데 사진을 그렇게 찍어놨어? 아빠가 안티네..."


"아니 어제랑 달라... 진짜 어제랑 많이 달라졌어 부기도 빠지고..."


어제는 조금 후덕하고 푸근한 인상이었다면, 오늘은 정말 아기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작고 귀엽고 쌔근쌔근 자고 있는 도담이의 모습이 우리 눈에는 '천사'같았다. 투닥거리는 것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던 나와 아내는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사진과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힘겹게 몸을 이끌고 병실로 내려와 아내와 나는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남들이 보면 팔불출이라고 하겠지만 별 수 없었다. 눈은 어떻고 코는 누굴 닮았고, 귀가 정말 잘생겼다는 둥의 얘기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전날, 그러니까 출산 당일 밤에 병원을 찾았지만 늦은 시간이라 도담이를 못 보고 돌아간 우리 부모님을 시작으로 주변 친척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에게 온통 사진을 보냈다. SNS와 메신저 등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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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담이의 탄생은 아내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한 모양이다.

일단 우리 부모님은 드디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처음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어우 야, 나 그럼 할머니 되는 거야?"


라며 앙탈(?)을 부리시던 어머니는 실감이 잘 안 난다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도담이 사진을 보신다고 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도담이 얼굴에서 할아버지 얼굴이 보인다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기분 좋으셨던지 연락처에 있는 모든 친구, 지인분들에게 도담이 사진을 보내며 자랑하셨단다.


사실 나는 친가, 외가를 떠나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장남, 장녀인 부모님 덕분에 장손으로 태어나 귀한 아이 대접을 받은 것도 있지만 원체 사랑이 많은 분들이셨다. 아내와 결혼할 때, 아내가 임신했을 때 친할머니,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모님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기분이 묘한 동시에, 우리 부모님이라면 도담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실 거라 생각이 들어 든든했다.


고모가 된 내 동생은 아직 호칭이 어색한 듯했다. '도담이 옷 걱정은 하지 말라고 그래'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도담이가 태어나면 입힐 온갖 종류의 귀여운 옷들을 검색하는 열의를 보여주던 동생은 도담이가 태어나자 단톡방에서 츤데레 역할을 맡았다. '귀.. 귀엽긴 하네', '됐으니 사진이나 더 보네'라는 식으로 애정표현을 에둘러하는 중이다.


아기는 둘째치고 아직 결혼한 친구도 많지 않아서 내 지인들은 몹시 신기해하는 중이다. 저마다 삼촌, 이모, 고모를 자처하며 놀아주겠다며 줄을 서고 있는데, 실제로 얼마나 놀아줄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작은 아이 한 명의 탄생이 주는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은 것 같다. 그 가족에, 가족의 가족에게,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그 행복감과 기대감, 감정적 포만감이 전이돼 특유의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아이 있는 집은 분위기가 따뜻하다던 어른들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나 역시 매일을 기대감과 무게감을 번갈아가며 느끼고 있다. 이 아이의 평생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줘야 하는 부모로서 역할을 소홀하지 않기 위해, 도담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기 위한 무게감과 그렇게 자라나는 도담이를 지켜보는 기대감과 행복감이 끊임없이 줄다리기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처음으로 하는 부모라는 역할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평생을 함께 한다'라고 하니 생각난 건데, 슬슬

평생 도담이를 따라다닐 이름을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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