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조리원에게 남편이란?
1. 제왕절개 후 일주일 간의 입원생활이 끝나고, 우리는 조리원으로 넘어왔다. 이 글을 쓰기 조금 전까지도 조리원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조리원에서의 내 일상은 단조롭다. 밥 먹고 누워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켜고 하진이 사진을 보거나, 자거나.. 이 단순한 일상의 반복 때문에 오히려 아내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반가워 벌떡벌떡 일어나 심부름을 할 정도니까. 하지만 몇 안 되는 나의 일거리마저 조리원 도우미분들에게 곧잘 빼앗기고 만다.
청소나 빨래 등 기본적인 것들부터 간식을 포함한 산모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기 때문에 남편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십상이다. 괜스레 물건들을 어질러 놨다가 정리도 해보고, 환기도 시켜본다. 괜히 안절부절 눈치를 보는 내 모습이 아내는 웃긴 모양이다.
"그냥 누워서 쉬어, 할 거 없어."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괜히..."
결국 큭큭거리며 누워 빈둥대기로 한다. 아내와 나란히 천장을 보고 누우면 자연스레 하진이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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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편에게 조리원은 불편하다.
우선 굉장히 덥다.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뼈 마디마디가 다 벌어진 산모들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하면 평생 뼈마디가 시리기도 한다고. 그래서 산후조리원의 산모들에게는 두꺼운 겉옷을 입히고 수면 양말을 신게 한다. 그걸로도 모자라 모든 방이 찜질방을 방불케 하는 온도로 끓고 있는 것이다. 체질적으로 땀을 흘리지 않는 아내도 조리원 이곳저곳에서 꽤 많은 땀을 흘리며 지내고 있다. 하물며 심심하면 땀을 흘리는 체질인 나는... 잘 때 입으려고 가지고 온 잠옷은 진작 트렁크에 들어갔고, 반바지와 반팔 티, 끝내는 속옷만 입고 자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땀이 많거나 더운 것을 못 참는 체질의 사람들에게는 곤욕이 아닐 수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아내의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건강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두 번째 불편함은 바로 '시선'이다. 나는 꽤 오래 비염을 앓고 있는데 식사를 하거나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노출되면 여지없이 '훌쩍'거리게 된다. 이게 참 눈치 보인다. 다 같이 있는 식당에서 훌쩍훌쩍거리거나 밥 먹다 사레라도 들려 기침을 하게 되면 다른 산모들이 직접적으로 눈치를 주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아도 도둑이 제 발 저리게 되는 것이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큰 소리로 '아파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라고 떠들어댄다.
"아, 밥이 목에 걸려서 기침이 나네."
"여기 따뜻해서 비염이 심해지나 봐, 콧물이 계속 나네."
이런 나를 아내는 놀려댄다.
"눈치 좀 그만 봐, 다른 산모들도 아파서 그러는거 아닌거 다 안다니까?"
"그래도 싫은 사람도 있을거야.. 안심시켜 드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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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 남편에게 조리원이 불편하다기보다, 조리원에게 '남편'이 불편한 존재일 것이다. 입구마다 소독기를 설치해 놓고 청결을 최우선 덕목으로 꼽는 조리원에 온갖 바깥공기와 세균을 퍼 나르는 것이 바로 남편들이다. 실제로 낮 시간과 퇴근 후 조리원 엘리베이터 냄새만 맡아봐도 알 수 있다. 낮에는 세정제와 방금 건조한 세탁물 냄새가 섞인 기분 좋은 느낌이라면, 밤에는 고기, 담배, 음식 냄새가 난다. 남편들이 겪는 조금 덥다거나, 기침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과는 비교 불가한 '불쾌함'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나 역시 앞에 언급했던 불편함들은 '굳이 언급해야 한다면 이런 것이 낯설다'라는 정도이지, 조리원은 남편과 아내가 산후조리를 하며 함께 지내기에 쾌적하고 편한 시설이다. 실제로 내가 느끼고 있는 불편함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아내를 보며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조리원에서 2주, 남편은 아이를 만질 수 없다. 다른 방문객들과 마찬가지로 신생아실의 유리벽을 통해 멀리서 보는 게 전부. 하지만 아내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모유수유를 하는 산모의 경우 3시간에 한 번씩은 모유를 빼야 했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을 '유축'이라고 하는데, 유축을 제 때 하지 않으면 가슴이 뭉쳤고 아내는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뭉친 가슴을 풀어주기 위해 조리원 내에서 마사지를 해주기도 하는데 일시적인 해소에 불과했다. 아이가 엄마를 잘 도와주거나(모유수유를 원활하게 하는 경우) 유축을 하면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데 문제는 하루가 24시간이라는데 있었다. 새벽이라고 해서 모유가 차지 않는 게 아닌지라 무조건 3시간에 한 번은 유축을 해야 했고 아내의 수면 패턴은 엉망이 됐다.
밤 12시, 새벽 3시, 6시... 걸려오는 전화에 아내는 벌떡 일어나 하진이를 만나러 가거나 소파에 앉아 유축을 했다. 낮이고 밤이고 계속되는 유축과 모유수유에 아내는 몽롱한 표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잠시 쉴 틈이 나면 앉아서 졸거나 누워서 쪽잠을 자는 아내를 보며 속상했다. 안쓰러움과 함께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영역에 대한 답답함이 크게 느껴졌다. 일정 시기까지만 모유수유를 하고 젖을 마르게 하는 음식을 먹어 젖을 끊으면 어떠냐는 말도 꺼내 봤지만 아내는 단호했다.
"분유도 어차피 먹어야 하지만, 모유 나올 때까지는 계속하고 싶어."
"모유수유가 좋은 거야 나도 알지만.. 피곤해 보여서 얘기한 거야. 힘들지 않아?"
"힘들어, 힘들지.. 근데 하진이 보면 또 잊게 돼."
눈앞의 아내는 여느 때보다 피곤해 보이고, 작아 보였다. 동시에 참 크고 든든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하진이 생각하면서 힘내 줘서 고마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라는 말을 끝으로 나도 아내 옆에서 낮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유리벽 너머에서 배냇짓을 하며 웃는 하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진이를 안고 새벽 늦은 시간에도 수유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피곤하지만 힘이 나는 기분이 들어 아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힘들지, 어렵지.
그래도 하진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