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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지은 Jun 18. 2019

도시에서 영혼이 시들지 않고 사는 법

낮의 감정들이 밤까지 이어질 때


그런 날이 있다. 사람들 틈 사이에선 어찌어찌 버텼는데 집에 돌아오니 탈이 나는 날.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날이었는데, 집에 오니 온몸이 찌뿌둥하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저 땅 밑으로 기분이 푹-하고 가라앉았다.



1. 차를 끓인다


침대에 누워있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느릿느릿 가스불을 켜고 물을 데웠다. 티팟에 말린 돼지감자 4조각을 넣고 따뜻한 물을 후르르. 좋아하는 찻잔에 차를 따라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김금희의 단편을 펼쳤다.


2. 책을 펼쳐본다


"백지에 가까운 다이어리에 특별할 것 없는 일정을 적어보거나 (...) 비 구경을 하거나 보도블록 사이로 난 풀잎들에 괜히 시선을 두는 것. 사실상 앞으로 낮 동안 선미가 해야 할 업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었는데, 왜 그런 무용한 것들을 할 때만 서울에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김금희,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감정은 전염된다. 꼭 내가 주체가 되지 않아도 옆사람의 부정적인 말, 한숨, 날이 선 대화들과 끝내 숨기지 못한 감정들. 그것들이 집까지 끈질기게 달라붙는 날이 있다. 샤워를 하면서도, 이불을 털면서도 낮에 느낀 감정들이 다시, 다시 되새겨진다.


아직 따뜻한 찻잔을 들고 베란다로 자리를 옮겼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빗소리와 여전히 어딘가로 바삐 향하는 자동차 소리가 섞여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멍하니 창밖을 구경했다. 산책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고양이처럼. 이곳이 우리 집 멍zone.



3. 관찰자의 시선으로 산책하기


비 오는 날을 빼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하늘도 보고, 물이 흐르는 소리도 듣고.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천천히 구경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린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걸.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 그저 바라본다.



소화제 두 알을 책상 위에 꺼내 놓았었는데, 차를 다 마시고 나니 속이 한결 편해졌다. 소화제를 다시 서랍에 넣고 잠드는 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

Jim Brickman - The Moon Song

권나무 - 물

박지윤 - 봄, 여름 그 사이

이랑 - 일기

김창완 -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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