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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해 Mar 13. 2021

구좌에살아요.

겨울 제주살이 #2 동네

제주로 여행을 와서 10일 동안 구좌읍 세화리에서 산다. 여행을 왔지만 일상처럼 소소하게 지내보려고, 이곳에 산다고 표현을 해보았다.


우도에서 1박 지낸 것을 제외하면, 제주에서의 숙소는 두 곳이었는데 모두 세화의 작은 골목 안에 들어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한 달 전이었는데도 거의 예약이 되어있어서 3박 이상으로 예약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숙소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예약을 하는 탓에 혹시 열흘 내내 불편한 게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각 숙소에서 3박, 5박을 하게 되었다.


당근즙과 당근밭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매일 해야겠다 하는 것이 한두 개씩 생겨서 현지에 가서 공략하고는 한다. 지난 태국 여행에서는 과일과 팟타이를 하루에 한두 번씩 꼬박 먹었었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한동안 가볼 수 없는 지금에 그 생각을 하니 새삼 그립다. 이번 목표는 매일 당근즙을 마시는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나는 당근주스를 마시기 위해 겨울에 구좌로 왔다고 할 수 있다.


먹는 당근

몇 년 전 친구 추천으로 '종달수다뜰'이라는 당근즙 포장 판매를 하는 식당을 알게 되었다. 그땐 당근 철이 조금 지난 봄이었음에도, 그리고 나는 당근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데 즙이라니 시큰둥해하며 마셨는데, 예상외로 아주 맛있어서 눈이 번쩍 뜨였었다. 그 뒤로 벼르고 있다가 이제 기회가 와서 달려왔다.

식당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면 바로 갈아서 포장을 해주신다. 950ml에 1만 원. 받자마자 먹어도 맛있고, 냉장고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시원하게 먹으면 더 맛있다. 와서 겪어보니 역시나, 겨울의 제주 대표는 분명히 당근이다. 아쉬워서 서울에도 데려와 한동안 마시며 추억하였다.

그리고, 숙소에서도 아침에 당근즙을 만들어 주시곤 해서 감사히 맛있게 먹었다.

당근즙 -종달수다뜰, 두베하우스


보는 당근

구좌는 요즘 당근밭에 둘러싸여 있다. 처음에는 주홍 당근들이 땅속에 숨어있어서 뭔지 잘 몰랐는데 수확하는 모습을 보니, 어디로 눈을 돌려도 보이는 촘촘한 초록 풀들은 모두 당근 줄기였다. 종종 낮은 집들과 낮은 돌담 안의 당근밭과 흙길을 따라 걸어 다녔다.

당근밭


독서와 책방

후반에 묵었던 숙소는 책방을 겸하는 곳이었는데, 방에 방명록과 함께 책이 한 권 놓여있었다. '이석원' 님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매일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서 읽었다. 비 오는 날 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볼 때는 특히 더, 현생을 벗어나 여행을 와서 다시 책 속으로 떠나는 일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작가님의 생각과 연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에 이끌려 술술 읽었다.

숙소의 책방에서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책을 구입해서 이 책도 틈틈이 보았다. 강릉에 갔을 때 '버드나무 브루어리'에서 맥주 한잔과 함께 구입했던 책도 할머니에 관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책이었는데, 적어도 독서로는 미래 생활을 차곡차곡 준비를 하는 중이라 볼 수 있겠다.

삼춘책방, 두베하우스


동네 책방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점이 보여서 들어가 보았다. '혜원책방'이라는 무인 서점이었다. 옆 가게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벗 삼아 잠시 둘러보았다. 동네 서점을 여러 곳 가고 싶었는데 이미 읽을 책이 두 권이나 있어서인지 찾아다녀지지는 않았다. 다음의 매일 공략집으로 삼기로 한다.

혜원책방


마실 나가기

몇 번은 다른 마을에 다녀오기도 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비 오는 날, 친구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 가기로 했다. 이곳에 대해 몇 번 추천을 받았었는데 아직 가보지 못한 터였다.

입구에서 전시실까지 가는 사이에 넓은 정원이 있다. 빗소리와 자박자박 자갈길을 걷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비 오는 정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김영갑 님께서는 용눈이 오름을 사랑하시어 평생 이곳에서 사진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계절마다 위치마다 특별하고 아름다운 풍경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는 그렇게 길게 뭔가에 빠지는 편이 아닌데, 언젠가는 그런 일생일대의 운명이 오려나.


용눈이 오름

김영갑 님의 갤러리에서 받은 감명을 이어서, 맑은 어느 날에 용눈이 오름에 가보기로 한다. 이분을 그리 오래 잡아둔 매력이 무엇일까 알아보려고 한다. 주변을 보며 천천히 걷기에 힘들지 않고 딱 좋은 경사와 너비와 거리에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오르는 동안 조금씩 다른 풍경이 나와서 매번 오더라도 새롭게 보이겠다 싶다. 오름에 올라와보니 제주의 대부분이 다 보인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길도 있고 당근밭도 있고 제주의 모든 것이 여기에 다 있다. 나도 이런 다양한 풍경을 가졌으면 싶다.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


한라산 눈꽃

우연히 티브이에서 본, 눈이 덮인 한라산 가는 길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겨울에 제주에 왔다면 한라산의 눈을 봐야겠다 생각해서 가보았다. 등산을 할 체력은 안되고, 차로 갈 수 있는 최대한 높은 곳인 어리목 휴게소로 가기로 한다.

탐방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 보기도 하고, 꽁꽁 언 호수 주변도 걸어보았다. 제주도에서 눈을 본다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눈님을 마주하니 감격스러웠다. 들인 노력에 비해 효과는 정말 최고였다.

어리목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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