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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해 Mar 27. 2024

한국으로 돌아가는 때에 닿아

아쉽지 않도록 눈에 꼭꼭 #20240310 태국 푸껫-카오락

막연히 멀게만 느꼈던 여행의 마지막 날이 슬금슬금 오더니 어느새 오늘 그날이 되었다. 비행기 출발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아직 하루의 낮 시간이 남아있다. 유난히 아쉬운 오늘을, 돌아보면 미련이 남지 않은 좋은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잘 지내보기로 한다.

나이양에 있으면서 살까 말까 고민하던 태국 느낌이 나는 옷을 어제 뒤늦게 사서 자기 전에 정성껏 다려놓았다. 그동안은 수영복인지 운동복인지 모를 편한 옷들만 입었었지만 조금이라도 덜 아쉽도록 아직은 태국이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갖춰 입었다. 분홍색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탑과 치마 한 벌이다.


마지막 조식

조식 먹으러 식당에 왔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게 과일과 오믈렛과 볶음밥과 면요리를 담는다. 볶은 면 메뉴는 날마다 다르게 나오는데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얇은 면으로 된 음식이다. 누군가 복잡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기분이다. 보라색 음료가 원래 있었던가, 색이 예뻐서 이것도 한번 가져와 본다. 오래 한식을 안 먹어서인지, 요 며칠간은 잘 안 먹던 밥을 다 먹는다. 이왕이면 좋은 자리, 계속 노렸지만 자리가 없었는데 밖에 보이는 곳에 드디어 앉았다.

마지막 조식


마지막 체크아웃

밥 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좀 누워있었다. 이제 나가면 하루종일 밖에 있을 테니 피곤할까 봐 미리 쉬어둔다. 짐은 별로 늘어놓지 않아서 세면도구와 잠옷 등 쓰던 것만 정리해서 넣으면 된다. 여행하며 쓰기 시작했던 향수도 딱 맞게 다 썼다. 조말론의 와일드 블루벨 향이었는데, 작년 유럽 여행 때 샀었다. 풀향이 나는 것이 이곳 태국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여행하면서 일회용품을 많이 쓰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비닐봉지라도 모아두고 물건을 살 때 재사용했는데 남은 건 가지고 가서 써야겠다.

다 쓴 향수병, 비닐봉지들


한국용 손톱으로 바꾸기

 푸껫에 오기 전부터 도착하면 하려고 생각했던 것이 네일하고 머리땋기였다. 현지에 스며들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푸껫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네일 숍에 가서 입체적으로 디자인이 된 젤 네일을 했다. 2200밧이었나 7~8만 원을 주었으니 한국보다는 싸게 했던 것 같다. 태국에 온 실감이 나서 기분이 좋아졌었다. 이제 한 달이 되어가다 보니 손톱이 자라나기도 했고, 한국에 가면 초봄이기도 하고, 모임도 있다 보니, 아쉽지만 봄 느낌으로 다시 받기로 했다. 구글 지도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서 핑크와 골드 태국향 스티커 조합으로 예쁘게 바꾸었다. 이번에는 500밧을 썼다. 전에 했던 것 중에 돌고래 모양을 하나 남겨두었는데 새로 바꾼 것과 어울리지 않아 오늘 다시 가서 바꾸었다.

https://maps.app.goo.gl/W1WKWv2PtmJaTGjU6


마지막 마사지

이번에 여행을 와서는 가능한 대로 거의 매일 마사지를 받았었다. 때로는 아쉬운 날도 있었는데, 오늘은 어제 갔던 곳에 가서 같은 분께 마사지를 받았기 때문에 잘 받고 나왔다. 마사지가 분을 두 번밖에 안 봤지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아쉬워하며 안아주셨다.

https://maps.app.goo.gl/mXLJwajzREvq4K3eA


마지막 저녁

저녁 식사는 'Sea Almond'에서 먹기로 했다. 이틀 전에 왔을 때 태국 수제 맥주를 팔았지만 생맥주가 아니기도 하고, 전에 먹었던 태국 맥주가 내게는 맞지 않아 지나쳤었는데, 그래도 이번 태국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까 실망하더라도 먹어보기로 했다. 기대가 낮아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 탓인지 맛이 나쁘지 않았다.

https://maps.app.goo.gl/MJPcfT9LR5mn3mqv6

태국 수제 맥주


'Tops'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올 때마다 계속 밀크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믹스로 들렸는지 세 번째 주문이 되어서야 밀크로 제대로 받았다. 별 일도 아닌데 중요한 일을 마친 것처럼 뿌듯했다.

https://maps.app.goo.gl/F6CuZnbr6BLifMbc9

뿌듯한 밀크 아이스크림

다시 바다로 돌아와 선베드에 잠시 앉아 마지막 날의 바다와 석양을 바라본다. 아쉽다. 태국에 있는 동안 일 때문에 복잡하거나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했던 날도 있었지만 잠시 마음이 언짢았던 것뿐 진심은 아니었다. 한국에 갈 수밖에 없는 바로 전날까지 연장을 해가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머물었는데도 정말 마지막 날이 되고 보니 아쉬움뿐이다. 한국에 가면 당장 할 일들이 쌓여 있어서 미루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복잡한 일들은 끝까지 모른 채 살고 싶기도 하다.

아쉬움 가득한 여행 마지막 날의 기록
나이양 바닷가


떠나는 길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맡겨둔 짐을 찾아서 이제 공항으로 간다. 호텔에서 300밧이면 공항에 데려준다고 해서 이용하기로 했다. 큰 승합차를 혼자 타고 공항으로 다. 그랩으로 차를 부르려고 했었는데 호텔에 먼저 물어보길 잘했다. 혼자 여행하면서 차를 타는 것이 늘 조심스러웠는데, 좀 더 안전하고 저렴하게 가게 되었다.

공항 가는 길에, 마지막 숙소 모습


공항에 7시 조금 지나서 도착했다. 표시된 체크인 카운터에 가니 다른 항공사가 있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내가 가려는 곳은 8시 반부터 열린다고 한다. 공항 내에 사람이 꽤 많았지만 주변에 앉을자리가 있어서 책을 꺼내 읽었다.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을 여행 동안 절반 조금 넘게 읽었다.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여행 중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카운터가 생기자마자 체크인을 하고, 라운지에 가보았다. 편한 곳에서 쉴 생각이었는데 일반 의자들만 있어서 구석 자리에 앉아 기대어 있었다. 환경이 좋아서인지 스트레스가 적어서 그런지 태국에 있는 동안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며 잠을 잘 잤다. 오늘도 밤 10시가 되어가니 어김없이 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못 보던 독일 것으로 보이는 생맥주가 있어서 한잔 마셨다.


돌아가는 비행기

기다린 끝에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고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고 면세품을 산 다음에, 승무원 분께 기내식 때 안 깨워도 된다고 하고서는 누워서 눈을 감았다. 소음도 줄일 겸 제공되는 헤드폰으로 이북을 선택해서 듣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이북은 끝나도 연이어 계속 재생이 되는 모양이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된 이유를 표하같은 부분이 될 때마다 깨서 들렸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고 쭉 잤다.

눈 뜨니 인천


일어나 보니 곧 도착한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밥도 안 먹고 내내 잔 적은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잠을 자서 피곤한 느낌은 아닌데 중간중간 깨기도 했고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약간 몽롱한 상태로 걸어 나갔다.

짐을 기다리며 지난 여행을 생각해 보니 바다에서도 놀고, 온천도 하고, 마사지도 하고, 여러 가지 모두 충분하고 좋았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잘 마무리하였다.


시차도 두 시간뿐인 데다 밤에 비행기에서 자고 왔더니  별로 피곤하지도 않다. 어제도 한국에 있었던가, 태국에 다녀온 일이 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리무진 버스 타고 집에 와서 좀 쉬다가 오후부터 바로 예정된 일들을 하러 나갔다. 예약해 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저녁에 친구 만나서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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