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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Nov 13. 2022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고전소설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엔 공통점이 있다. 내용은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 소설, 영화, 음악, 미술 등 종류에 관계없이 말이다. 내 삶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사건 아닌 사건 역시 고전을 제대로 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시대별로 사람들이 사는 방식과 가치관은 다르다. 그 시간의 벽을 뚫고 모두에게 주는 울림이 있다는 건 그만큼 고전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답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고전은 무겁고 어렵다. 최근 고전소설을 거의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너무 무거워서. 항상 무거운 생각만 하게 됐고, 나만의 세상에 갇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블로그에 쓴 책에 고전소설이 유독 적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침 고전을 다시 읽고 싶어진 차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쓰고 싶어졌다. 처음 접했을 땐 정말 어려웠는데... 여전히 너무 어렵다 ㅎ....






고도에게?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무슨 소리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아직은 안 그렇다.

p. 31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이다. 하지만 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고도가 누군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 오는 지도 모른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하루 종일 고도와 만나기로 한 나무 밑에서. 하지만 이 장소 역시 정확하지 않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기 위해 두 사람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때론 서로에게 욕을 하고, 말장난을 한다. 그러다 운동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하지만 무한한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지루함과 초조 때문일까. 두 사람은 가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대화 역시 원활하지 않다. 서로 자신의 말만 반복할 뿐이다.(그래서 더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진다.. ㅂㄷ..) 그 시간의 무게에 두 사람은 종종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그만두자고, 떠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없다. 그저 그 자리에서 계속 고도를 기다릴 뿐이다. 두 사람은 '고도'라는 허상에 묶여있는 것은 아닐까? 블라디미르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직은 아니라고.



마지막 순간이라…… 그건 멀지만, 좋은 걸 거다.

p. 12



블라디미르가 기다림의 시간을 편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다. 어느 날은 불안함을, 다른 날은 지루함을, 또 다른 날은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가 이 시간을 견디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고도를 만나는 순간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날이 언제일진 모르지만. 그날은 분명 좋으리란 희망을 갖고 블라디미르는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하느님을 뜻하는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를 합쳐 고도(Godot)라 부른다는 해석도 있다. 중간중간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희생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해석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문학의 묘미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니까. 고도는 각자가 열망하고 꿈꾸는 무언가이지 않을까. 언제 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닿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지만. 닿을 수만 있다면 행복하고 좋을 테니까.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 말이오.

p. 51



희곡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티키타카의 연속이지만,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 앞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이 있기도 하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포조와 럭키다. 주체적으로 세상을 돌아다녀서일까. 포조는 조금 오만하고 폭력적이지만 깨어있다. 세상 물정은 전혀 모르고, 불평과 불안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며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현재 상황에 불평하지 말라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든 배울 점이 있고 행복하다고. 반면 럭키는 지식은 많지만 활용하지 못한다. 생각하길 멈췄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포조의 노예와 다름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열망하는 것 없이 그저 세상을 돌아다녔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불행해진다. 포조는 시력을, 럭키는 목소리를 잃는다.



우린 기다리고 있다. 우린 지루하다. 아니, 반대하지 말아!
지독하게 지루하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런데 심심풀이를 할 일이 코앞에 나타났는데
우린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냥 썩히고 있잖으냔 말이다. 자 시작하는 거다.
조금 있으면 모두들 사라지고 우린 다시 외톨이가 되겠지.
이 허허벌판 가운데서.

p. 135



포조와 럭키완 다른, 특별한 인물도 있다. 매일 저녁 고도의 말을 전하러 오는 한 소년. 소년은 매일 똑같은 말을 전한다. 오늘 밤엔 못 오겠지만, 내일은 꼭 오겠다는... 내일은 꼭 온다는 말에 희망을 갖고 두 사람은 오늘도 고도를 기다린다. 지루함, 불평, 불안, 초조 등과 함께. 이 시간의 늪을 견디기 위해 다양한 심심풀이 것들을 하면서.


이상은 닿을 수 없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설사 이상에 닿을지라도 우린 또 다른 이상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린 각자의 이상을 가져야 한다. 닿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야 포조와 럭키처럼 눈과 귀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이 지루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할 수 없다'라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지루해서', '그냥'처럼 사소한 이유만으로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언갈하는 순간 우린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세상도 매일이 즐겁진 않겠지만, 대체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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