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9
버터 맛을 좋아한다. 버터를 좋아하는 건지 버터의 맛을 좋아하는 건지 분명치 않아 “버터를 좋아한다”고 적지 않는다. 그게 그거지, 하면 그렇긴 하지만. 꼭 버터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버터 맛을 좋아하기에 비슷한 마가린도 좋아한다. 버터만큼 진하진 않지만 그런 맛이니까. 소금이 들어가 짭짤한 맛이 나는 “가염 버터”가 더 좋다. 버터 맛을 더 또렷이 나게 해주니까.
바삭할 정도로 잘 구워진, 조금은 딱딱하다고 느껴질 토스트 위에 버터를 바르는 것도, 혹은 통통한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버터를 두껍게 올린 뒤 하얀 거품이 일 정도로 지글지글 구운 것도 가장 좋아하는 아침 식사 혹은 간식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비해 막상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 잘 발라지는 적절한 온도와 굳기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버터가 들어가는 음식은 주로 저녁에 즐길 수 있다.
새우나 연어 혹은 작은 물고기 같은 해산물 요리도 버터를 더하면 그 풍미가 살아난다. 소고기도 때로는 버터에 구우면 평소 소금만 뿌려 먹던 맛과 다르게 즐길 수 있다. 글을 쓰는 현재, 버터에 구워지는 마늘 향이 코에 솔솔 전해지는 듯 하다.
엄마 말로는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버터를 꺼내 먹었다고 한다. 아무 것도 곁들이지 않은 채 버터만. 그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는—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무렵이었나—빵에 버터 발라먹는 것도 질색하던, 아니 그 어떤 음식도 다 좋아하지 않던 빼빼 마른 아이여서 정색하며 그런 적 없노라 부인했다. 내가 언제? 그러다 언제 어떻게 다시 버터 맛에 빠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현재의 나는 토스트 위에도, 팬케이크 위에도 일 센티미터 두께의 버터를 듬뿍 발라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감촉은 미끌거리면서 혀에 닿으면 고소한 신기한 음식이다. 단순히 고소하다고 표현하기엔 마치 참깨나 땅콩 같은 음식이 떠올라 마뜩잖다. 버터의 맛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비슷하게 미끄덩거려도 마요네즈는 싫어한다. 마요네즈나 크림처럼 미끌하지만 입 안에 가득 차는 듯한 부피감은 싫다. 그에 비해 버터는 날씬한 맛이다. 맛이 날씬할 뿐 먹은 후의 결과는 그렇지 않지만.
둘째가 나를 닮아 버터를 좋아한다. 빵에 버터를 바르고 싶다고 하면 나 혼자를 위해서는 잘 꺼내지 않는 버터를 내준다. 며칠 전엔 냉장고에서 갓 꺼낸 버터가 너무 단단해 레인지에 살짝 돌렸더니 너무 녹아 물이 되어버렸다. 깔깔 웃으며 “버터물이네“ 라면서 빵을 흠뻑 적셔 먹는 아이의 얼굴이 행복하다. ”엄마 내가 버터물 다 발라버려서 엄마 꺼 안남았어. 미안해.“라는 말을 듣는데 이미 내 입안에는 고소한 버터향이 전해진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이들과 밖에서 점심을 사먹는데 마늘바게트가 식전빵으로 나왔다. 너무 맛있다며 더 먹고싶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해먹자 하고 바게트를 사왔다. 내일 아침엔 바게트에 버터를 바르고 마늘을 으깨거나 잘게 다져 조금 얹어야지. 잊지 않으면 파슬리 가루도 조금 뿌려야겠다. 오븐에 겉이 노릇해질 때까지 구워주면 아이들이 호호 불어 먹겠지. 내일 아침 우리 집은 버터향으로 가득 채워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