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11
어느 집이나 그렇듯 아이들 용품은 때에 따라 조금씩 정리한다. 한꺼번에 다 쓸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불쑥 찾아오지만, 잘 다스리며 “조금씩” 정리해야 한다. 아끼는 마음, 아쉬운 마음이야 있겠지만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전부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아는 동생네, 아이들 친구 동생에게 등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은 물려주곤 한다.
최근 정리한 물품 중 우리 집에 제법 오래 있다가 물려준 것이 아이들 부엌놀이 용품이다. 부엌놀이라는 게 부피도 크고 부속품—냄비, 프라이팬, 헝겊 음식, 나무 음식, 조리도구 등등—도 많은지라 집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컸는데, 매일같이 갖고 놀지 않더라도 가끔씩 없으면 허전한 그런 “가구”였다. 아이들이 아직 말이 서툰 아기이던 시절부터 “엄마아빠 모 만드러두까요?”하며 요리 흉내를 내고 신기한 결과물을 생산해내던 물건이자 공간. 조금 커서는 마법의 기구가 되기도 하고, 가게 놀이의 배경이 되기도 한 부엌이다.
그러다 워낙 갖고 노는 시간이 뜸해지니 졸업할 때가 됐다 싶어 아이들에게 허락을 구한 뒤—허락과 적절한 작별이 매우 중요하다. 맘대로 버리거나 주거나 한 뒤 감당치 못할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건너 건너 아는 집 아이들에게 보내었다.
지난해 연말즈음 전달을 했으니 이미 여러 달이 지났다. 그런데 우리 집 둘째는 가끔씩 그 부엌이 생각나나 보다. 집에 있을 땐 그리 애착하는 물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것”이 보내져서 잘 쓰이고 있는지, 아낌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어제 자기 전 불을 끄고 누운 채 문득 물었다. “우리 부엌 잘 있겠지?”
그러고 보니 부엌 말고도 건전지 동력으로 혼자 소리내며 굴러가는 장난감을 물려준 뒤로도 몇 번이나 그게 생각났는지 엉엉 울며 물어보곤 했다. “우리 달팽이 이뻐해주겠지? 마음대로 버린 거 아니겠지? 우리가 좋아했던 건데.” 하며. 단순히 내 물건이 내 손을 떠난 아쉬움보다 누군가에게 계속 애정을 받고 있을지 궁금해하는 아이.
어제 아이의 물음에 “그럼. 아주 잘 갖고 논대.“ 대꾸하니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큰일이야. 요즘 사람들이 아가를 안낳는다는데 그럼 그건 나중에 누구한테 가지?“ 한다. 으응? 한국의 저출산이 저 꼬맹이에게 근심 걱정을 안기다니. 저출산이 걱정이 아니라 자고로 물건은 물려주고 또 물려주며 돌고 돌아야 하는데, 더이상 물려줄 아이가 없어 제가 쓰던 물건이 애정 받지 못하고 그냥 버려질까봐 걱정인가 보다.
첫째에 비해 물건을 더 버리지 못하는 아이라 “보물상자”격인 쇼핑백에는 (엄마인 내가 보기엔 그저 쓰레기일 뿐인)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그득하다. 한 번은 “엄마가 정리하면 다 버릴 테니 알아서 정리해 봐.” 하니 일단 쓰레기통에 우르르 버린 후 “근데 버리기 싫어.”라며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해 안아주고 달래주고 다시 쓰레기통에서 끄집어 낸 적도 있다. 결국 내가 가끔 몰래 버리곤 하는데, 기억하지 못하는 종이 쪼가리들이 대부분이지만 어쩌다 나중에 어디 있나 찾는 것도 있어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자기 물건을 아끼고 예뻐하는 건 예쁜 마음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슬퍼하지 않을만큼의 애정만 물건에게 주길. (다 데리고, 쥐고 살 순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