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4
문지혁 선생님의 <고잉 홈>을 읽었다. 사두고선 곧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이미 보던 다른 책을 끝내느라 어제 저녁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한 번 시작하니 쉴 수가 없었다. 오늘은 큰 아이 학교 학부모 상담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 교실 앞 복도에 서서 읽으면서까지 몰아쳐 읽으며 끝냈다. 뭔가 빨리 다 읽어내야 할 것 같았다. 소설은 단편집이라 호흡이 긴 것도 아니고, 한 편이 끝나면 잠시 숨을 돌릴 수도 있었는데. 얼른 끝내고 책장을 덮어야 할 것 같았다. 몰입해 보면서도 “끝내야 하는” 으로 표현하는 게 이상하지만. 읽는 내내 이전의 유학 시절이 닿아오는 기분이었다.
요즘은 짧게라도 외국에 나간 경험이 많이들 있으니 꼭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이 소설 속의 “에어” 공간의 느낌을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이쪽 저쪽의 소속도 아닌,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상태의 불안감, 외로움, 초조, 우울.
최근 일 때문에 뉴욕대 행정실이랑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있었는데,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당당히 요청해야 할 일임에도 쭈뼛쭈뼛하며 이메일을 보냈던 게 떠오른다. 결국 마지막은 “I am going to investigate this and get back to you.”로 끝나고 며칠이 지났지만, 내가 다시 연락하기까지 아무 소식도 없을 거다. 늘 그렇듯. 며칠이나 있다 연락해야 할까, 나 까먹은 거 아니지? 다 알아봤니? 귀찮게 하려는 건 아닌데 (귀찮아도 해야 할 일이면 해야지), 어떻게 됐니? 라며 또 이메일을 보낼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틀린 것도 아닌데, 그리고 틀린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틀릴까봐. 혹은 뭔가 빼먹어서 서류상/행정상 문제가 생길까봐.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남의 나라 말로 “어설프게” 있는 상태는 뭔지 모를 불안함을 간직한 채 살게 한다. 따지고 보면 뭐 대단한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이메일 하나가, 전화 한 통이 심장을 콩닥거리게 하는지.
좋았던 일도 많았고 즐거운 기억도 가득하지만, 머리털 한 올 한 올까지 긴장 상태로 무장하고 지내던 기억이 남아 있는 그 몇 년. 아마 문선생님의 글이 그때 내가 살면서 느끼던 불안감을 살살 건드리다 나를 온통 덮어버릴까봐. 얼른 글에서 뛰쳐나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