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기쁨
남자 동료들은 퇴직 후 바로 다른 일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좀 쉬는 게 나을 것이라 권고해도 그들은 농담처럼 ‘쉬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을 한다.
내 경우는 퇴직직전에 느꼈던 두려움, 이를 테면 생활비가 모자라지 않을까?, 무기력해지지 않을까?, 생각의 회로가 멈춰서 머리가 나빠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나의 걱정이 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걱정을 했기에 다른 대안도 생각할 수 있었고 실제로 실행하지 않아도 검토를 했으니 게으르지 않았다는 위안이 되었다.
생활비는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여러 방도가 떠오르기도 했고 생활방식은 내 패턴에 맞추어졌다.
그리고 무기력하지 않았다. 생각의 회로도 느리지만 계속 굴러갔다. 이전에 문서작성에 익숙했던 뇌는 이제 감성적인 문장을 떠올리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내가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내 아이들의 영향도 크다. 아들은 여전히 손이 많이 가지만 나는 혼자서 의식주를 완성할 수 없는 아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침마다 이렇게 완성된 아들이 말까지 잘하니 사람들은 아들에게 ‘장애인 같지 않다. 일반인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말을 전하는 아들을 보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멋스럽게 입혔나?’
수염도 덥수룩하게 대충 놔두고 여드름 피부도 신경 쓰지 말고 겨울에 반바지를 꺼내 입는 아들을 그대로 보여주면 다른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들을 케어하고 딸과 나는 서로를 케어한다. 남편은 바닷가 근처에 똬리를 틀고 용처럼 살고 있다. 나는 때때로 용이 굶지 않는지 쓸데없이 신경 쓴다.
생활은 크게 변하지도 크게 즐겁지도 않다. 내 인생은 평범 그 자체로 흘러가고 있다. 조금 다른 점을 찾자면 평범함 속에 작은 행복들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작은 행복을 키우면 때때로 조금 더 자란 행복이 되기도 하는 기쁨을 느끼게도 된다.
진작에 거실에 놓아둔 화초들의 양을 늘려보았다. 물을 주면서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초들은 수줍은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것 같다.
그러나 얼마간 못 보고 지나치면 어느 날 꽃이 핀 화초도 있고 빨갛게 열매 맺는 화초도 있다. “너 참 이쁘구나" 말을 건다.
일할 때와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회사에서는 늘 직급에 따른 호칭으로 불렸는데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가끔 만나는 직원들은 그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데 아직은 그 느낌이 좋다. 호칭은 나의 역할과 위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어서 이 맛에 승진을 하려고 노력을 하나? 싶을 정도였다.
지금은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지회장님,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직원이 불러준다.
나는 될 수 없는 회장님이 되어 본다. 딸도 같은 회장이다. 우리는 커피숍에서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오늘은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에피소드를 적으며 하루가 흘러간다.
오늘은 웃으며 보냈으니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