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덱시 Oct 02. 2020

‘사랑해’라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요즘 눈을 마주 본 채 사랑을 속삭이는 상대가 하나 더 늘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집 강아지 마농. 마농이와 함께 산 지는 세 달 정도 되었다. 진돗개 정도 되는 몸집에 숱 많은 아이보리빛 털이 북슬북슬해서 산책하다 보면 삽살개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꽤 된다. 사실은 엄마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믹스견인데 삽살개의 피가 조금 섞였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조금 고양이 같은 성격의 강아지라 자기가 예쁨 받고 싶을 때만 나한테 와서 털썩 주저앉아 만지라는 듯이 쳐다보고는 이 정도로 됐다 싶으면 미련 없이 일어나서 멀찍이 가버린다.


  그래도 요 얄미운 성격의 강아지는 미워할 수가 없는데, 그건 나를 올려다보는 두 개의 갈색 눈동자 때문이다. 나는 그토록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는 눈동자를 본 적이 없다. 너무 사랑밖에 없어서 나도 얘한테 줄 게 사랑 밖에 없게 만드는 눈동자다. 침대 옆 바닥에 네 다리를 쭉 펴고 누워있는 털뭉치를 바라보다가 나도 그 옆에 마주 보고 누워 가만히 마농이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진다. 웃기게도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사랑해’라고 말할까 ‘아이러브유’라고 말할까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갈색 눈을 가진 생명체의 보드라운 얼굴을 부여잡고 기분에 따라 ‘사랑해’와 ‘아이러브유’ 중 하나를 골라 조용히 읊조린다. ‘사랑해’라는 말을 선택한 날이면 목소리가 속삭이듯 작아지고 말투는 왠지 조금 더 비밀스러워진다.


  연이를 상대로 수없이 했던 고민을 이제는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할 강아지한테까지 하고 있다니. 나는 왜 똑같은 의미를 지닌 그 둘 사이에서 평생을 왔다 갔다 하는 걸까.  ‘사랑해’라고 말한다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 ‘사랑해 ‘아이러브유’ |

  사랑해 ‘아이러브유’. 같은 뜻을 담고 있는  개의 다른 언어일 뿐이지만  입장에서는 느껴지는 말의 무게가 상당히 다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 ‘아이러브유’는 캐주얼하고 부담스럽지 않으며 ‘사랑해’보다 훨씬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동시에 ‘나는 당신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해’ 대신 아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문장이다.


  ‘사랑해’는 왠지 말하기 전에 몇 번 더 생각해야 할 것 같고 내뱉었다가 후회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든다. 큰 맘먹고 먼저 말했는데 상대로부터 ‘나도 사랑해’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내가 받을 상처까지 고려하게 되는 말이다. 가장 로맨틱하지만 그만큼 무겁고, 꺼내고 싶어도 막상 꺼내려고 하면 여러 가지 재고 따지게 되는 말.


  물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I love you’도 ‘사랑해’와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 진중하고 어려운 말이겠지만, 그게 아닌 우리나라에서 ‘아이러브유’는 꽤나 가볍고 장난스러운 말이다. ‘아이러브유’는 어쩌면 우리말 ‘너를 좋아해’보다 가볍게 들리기도 한다. 그저 많이 쓰이는 외래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진지한 사랑을 전달하려면 ‘아이러브유’가 아니라 꼭 ‘사랑해’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사랑해’가 아니면 절대 표현될 수 없는 사랑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 방어 기제인지 습관인지 아니면 그냥 사랑에 인색한 건지|

  연이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할 때도 있는데 그렇다고 가치가 떨어진다는 느낌보다는 정말로 사랑을 주체 못 해서 이러는구나 싶다. 나는 그의 사랑에 백 퍼센트 응답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뭔가 보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라 정말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일 테니까.


  반면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아껴 쓴다. 아니, 아껴 쓴다는 말보다는 어려워서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왠지 모르게 낯부끄럽고 내가 먼저 말하면 조금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이럴 때 아주 유용한 대안이 ‘아이러브유’ 전략이다. ‘사랑해’에 대한 대답으로 ‘아이러브유’를 쓰기도 하고, 내가 먼저 말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진지해지고 싶지도 않을 때 ‘아이러브유’를 쓰면 딱 좋다. 연이는 8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에게 한결같이 계산 없는 사랑을 주었고 변함없이 ‘내가 더 사랑해’ 같은 느끼한 답을 해줄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연이가 ‘사랑해’라고 하면 난 대부분 이 셋을 돌려가며 답한다. 1) 나도 2) 미투 3) 러뷰투. 아, 가끔 ‘스릉흔드’라고 할 때도 있다. 정말로 사랑이 주체할 수 없이 들끓어 올라서 가슴이 뜨거울 때면 겨우 겨우 ‘사랑한다’고 할 때도 있지만 극히 드문 일이다.






| 사랑의 매 |

  우리집은 사랑의 표현에 인색한 집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연이를 만나고 나서 깨달았다. 티 나고 겉으로 표현된 사랑만 고려한다면 부모님께 받은 사랑보다 연이에게 받은 사랑이 훨씬 클지도 모른다. 23살에 만난 사람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나를 세상에 탄생시키고 키워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보다 더 크다니 어쩐지 조금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내가 사춘기 시절을 겪으며 커오는 내내 자주 절제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법보다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부모님의 큰 사랑은 절대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티 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받은 사랑은 대체로 영어책이나 미술 도구나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사랑의 매를 통해서였다. 게다가 나는 세 아이 중 첫째로 태어나는 바람에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동생들보다 매를 더 많이 맞았다. 우리집에는 아버지의 엄지 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나무 몽둥이가 냉장고 옆 접착식 후크에 항상 가보처럼 걸려있었는데, 어머니가 그 몽둥이를 들 때마다 나는 손을 싹싹 비비며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 번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이유로 맞고 쫓겨난 적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까. 매주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갔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가 오전 수업을 받은 후 점심을 먹고 하교를 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팥도너츠를 도시락통 가득 싸주었는데 나는 당연히 하나도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집에 가져가서 냉장고 구석에 몰래 넣어두었다. 어머니에게는 팥도너츠를 다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나의 보잘것없는 거짓말은 말할 것도 없이 발각되었고 나는 일요일 아침부터 매를 맞고 문밖으로 쫓겨났다.


  내가 한 짓이 그리도 잘못한 일인가 곱씹으면서 혹시나 아는 친구라도 지나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밖에서 울었다. 쓰레기통에 팥도너츠를 몽땅 버리고 왔으면 완전 범죄가 되었을 일인데,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싸 준 도시락을 차마 버리지는 못했나 보다. 이 일을 떠올리면 당시의 내가 측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매를 들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나를 한 번만 이해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나는 크고 작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랑해’라고 잘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까.






| 말해야 아는 사랑 |

  연이가 자라 오며 엄마에게든 아빠에게든 단 한 번도 매를 맞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맞고 컸다고 모든 사람이 매를 맞으며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사랑의 매를 단 한 대도 맞아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마주치니 신기했다. 연이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연이는 나에 비해 교육의 기회나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많이 제공받지 못했지만 그의 주변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연이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너무 애지중지하셔서 가사의 대부분을 도와주셨고(무려 그 시절에!), 할머니께서 요양원에 계실 때는 매일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6차선 도로 가를 걸어가서 가죽밖에 안 남은 할머니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는가 하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몇 번이나 졸도하셨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연이의 아버지가 당신의 아내와 아들들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대충 상상이 간다.


  그 집에서는 사랑은 물론이고 기쁨, 화, 행복, 서운함, 슬픔 등 삶 속의 반짝이는 감정들이 망설임 없이 섞이고 부대꼈을 것이었다. 연이는 그런 집에서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깨어나며 다정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내가 되도록이면 나 자신과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음흉한 사람으로 성장해 갈 동안, 내 남편 연이는 사랑하는 마음이 들면 고민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많이 표현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서 나에게 다가왔다.





| 그에게서 배운 사랑법 |


  그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깜짝 놀랄 정도로 스스럼이 없어서 나를 종종 당황스럽게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온갖 말과 행동으로 나에게 사랑을 퍼부었다. 관계가 일상이 되고 깊어질수록 점점 표현이 줄어드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그는 나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할수록 티 나는 사랑을 했다. 그를 만나고 난 후 나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적어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그렇다. 생전 그런 티 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받았던 사랑은 그저 조용하게 기저에 깔려 있는 사랑이어서 내가 어떻게든 알아채야 했는데, 이 사람의 사랑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동안 벙쪄서 ‘얘는 원래 이런가 좀 미친 애 같아’, ‘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거야’,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하지’ 등의 질문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시종일관 무뚝뚝하고 마음이 베베 꼬인 사람이었지만 연이는 그런 것과 무관하게 자기 식대로 서운해하기도 하고 행복해하기도 하면서 나에게 사랑을 쏟았다. 그런 그가 멋졌다.


  오랜 시간 한결같은 그와 함께하며 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주 조금씩 변해갔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게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의 사랑을 감사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연이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사랑을 주는 것도 어렵지는 않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어머니에게 팔짱도 못 끼는 큰딸이었던 내가 연이를 만나고 나서는 어머니와 팔짱을 끼고 장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쑥스러워서 못 하다가 이제는 연이의 성화에 못 이겨 한 번 두 번 고맙다는 말을 하는 일이 늘어난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우리집 강아지 마농이에게 ‘사랑해’라고 해야 할지 ‘아이러브유’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걸 봐도 그렇고, 연이에게 망설이지 않고 ‘사랑해’ 혹은 ‘내가 더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는 걸 봐도 그렇다. ‘사랑해’라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를 위해, 사랑하는 그를 위해. 소중한 내 사람들을 위해 꼭 그렇게 되고 싶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인스타그램 @dexy.koh

매거진의 이전글 아, 결혼식 안 하길 잘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