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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삼각자 Apr 19. 2024

잔인한 4월이라고 투덜거리고 있을 건가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4월 19일. (금)

오전 주치의 회진 시간 전에 병동에 도착해서 대기했다.

어젯밤에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 코에 산소튜브를 걸었고 그전까지는 달지 않고 있던 환자감시장치. 일명 환자모니터를 달게 되었다.

방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도 C-arm이 병실로 들어왔었나 보다.


항암치료를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입원한 아버지는 과연 퇴원을 하실 수 있을 것인가.


주치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1. 흉수가 다시 차서 빼는 시술을 해야 한다. 영상의학과로 내려가서 시술을 하는 게 좋겠는데 그러려면 산소포화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송 중에는 마스크로 바꿔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병실에서 할 수도 있다.

2. 주말 동안 호흡을 원활하게 하고 통증을 관리하는 치료를 하면서 퇴원여부 등을 결정하기로 하고, 호스피스 관련해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3.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었고 환자의 상태가 항암치료를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오래 버티시기는 힘들 것 같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 ‘마음의 준비’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병실은 간호스테이션(N.S)에서 안이 보이는 위치에 있다. 근처에 있으면 간호사들의 대화가 간간이 들린다.


병원건축 전문설계회사에 근무하진 않았지만 병원건축연구실에서 공부를 했었고, 회사에 간혹 진행되는 병원프로젝트가 있으면 투입이 되었었다. 독립을 하고 나서는 800 병상 규모의 종합병원급의 메디컬 플래닝을 의료진과 협의하며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병원 대부분 실의 이름과 기능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각 과, 센터의 진료내용과 절차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어서 N.S에서 간호사들이 나누는 아버지의 이름을 말한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영어약자로 대부분 이어지지만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전에는 그게 큰 지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는 참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다행히 산소마스크를 쓰고 이송이 가능한 상태로 확인이 되어 배액관 삽입을 위해 혈관조영실로 이동을 하셨다.

하지만 출발 전 섬망 증세로 생각되는 행동을 보였다.


“여기가 어디냐?”, “내가 무슨 큰 병에 걸렸냐?”, “몸에 붙은 이 전선들과 관을 떼고 싶다.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

분명히 주치의로부터 병에 대해 설명을 들으셨는데 기억을 못 하시는 건지. 그냥 숨쉬기가 힘들어져서 병원에 모시고 왔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흉수천자는 잘 끝나서 병실로 돌아오셨다.

어제와 오늘의 치료를 통해 호흡과 산소포화도는 정상범위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몸 상태는 항암치료는커녕 일상생활도 못하실 정도로 쇠약해져 있다.


주말 동안의 치료를 통해 퇴원해서 집으로 가실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저녁에 퇴근해서 병원으로 찾아온 동생과 식사를 하고 아버지 곁에 있다가 오늘도 아버지 곁에 계시겠다는 어머니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잔인한 4월이라 생각했지만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병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폐암에 대한 공부(?) 같은 건 생각도 못하고 그저 현재 상태가 나아지길 바랄 뿐이지만 서로의 삶과 가정에 집중하느라 관심을 갖지 못했던 우리 가족이 모여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에 의미를 두고 인생의 다음 장을 써나가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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