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4월 29일. (월)
아버지는 집에서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고 예정대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하셨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 어머니가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
대기하지 않고 원했던 곳에 입원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말해야겠다.
아버지는 아침에 “왜 또 병원에를 가느냐.”라고 하시며 잠시 입원을 거부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셨으나 나와 동생이 잘 설득을 해서 인지. 아니면 아들들의 얘기는 들으려고 하시는 것인지 곧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원무에서 입원수속을 하고 4층에 있는 완화의료병동으로 올라갔다.
좋은 시설이었지만 약간 드라이한 느낌이었던 거대한 스케일의 대학병원과는 달리 아담한 휴먼스케일이 느껴지는 병원의 해가 잘 들고 조용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밝은 느낌의 병동이었다.
오늘내일하는 환자들이 가득할 것 같았던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리 여느 병원의 병동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고 담당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환대와 친절을 뿜어내고 있었다.
N.S에 대학병원에서의 영상 CD와 각종 의무기록사본을 전달하고 꼼꼼하게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검사를 위한 채혈과 X레이 촬영을 하고 잠시 후 결과가 나와 담당 의사와의 면담을 했다.
말기 암 환자의 케어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호흡곤란과 출혈, 각종 장기의 부종 이 세 가지 이슈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에 따라 환자의 기대 여명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출혈. 그중에서도 뇌출혈의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혈소판을 일곱 팩이나 수혈받으셨던 것이다.
담당 의사는 암을 비교적 조기에 발견하여 3~5년간 치료를 했으나 완치가 되지 않고 재발 또는 전이가 된 경우와 아버지처럼 늦게 발견을 해서 손쓸 새 없이 상태가 악화되는 것. 두 가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이 말에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몇 년간 힘든 암투병을 곁에서 지켜보며 케어를 하다가 모두들 지쳐갈 때쯤 더 이상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면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식사를 못하면 억지로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것을 드시게 해라.
대학병원에서 한 보따리 받은 퇴원약도 대부분 투약중지. 완화의료 개념에서의 케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나올 때보다 많이 편해 보이셨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발로 서서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보통의 병원의 면회시간은 평일 저녁 6~8시, 주말은 오전 10~12, 저녁 6~8시인데 이곳은 평일에도 오전 면회가 가능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환자와 가족, 지인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저녁 면회시간에 이모와 외삼촌이 오셔서 어머니는 오랜만에 병원을 벗어나 형제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오셨다.
이제 또 며칠간 아버지의 곁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상주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어머니는 자신의 건강도 많이 상하셨지만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려 하지 않으신다.
매일매일의 모습이 달라져가는 아버지와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주려 하시는 것 같다.
두 분 다 마음이 편한 대로 해드리기로 한다.
그게 호스피스에 들어온 우리 가족이 하면 되는 앞으로 남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