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5월 1일. (수)
호스피스에 입원을 한다는 것은 일단은 의료보험 수가상 정해진 입원기간인 60일 이내에 임종할 것을 예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여유를 부리고 있을 틈이 없다. 바로바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쉬는 날이어서 동생과 알아봐 두었던 서울 근교에서 자연목 수목장이 가능한 곳을 방문했다.
광릉수목원과 같은 산줄기에 있는 이곳은 전국에서 자연목 수목장이 가능한 단 두 곳 중 한 곳이라고 했다. 두 곳밖에 안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연목 수목장이 아니면 뭐냐. 그냥 공원묘원처럼 줄지어 묘지대신 작은 나무가 심어져 있을 뿐이다.
이건 싫다. 아버지도 별로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납골당은 더 싫다. 요즘은 그 어감 때문인지 봉안당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생전에도 공동주택에 살았는데 사후에도 아래윗집, 옆집이 있는 작은 칸에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비용에 따라 로열층이 있으니 적잖은 돈을 쓰고도 스스로의 능력부족을 한탄하며 한동안을 마음 아프게 살아야 하는 것도 싫다.
이곳은 규모가 상당해서 매장묘, 가족봉안묘와 별도로 두 곳의 수목장지가 있었다.
한 곳은 산 아랫부분에 있어 접근성은 좋지만 조성된 지가 오래되어 좋은 위치, 좋은 형태의 나무는 이미 사용 중이거나 예약이 되어 있었다.
또 어머니와 며느리들, 딸아이들이 나무까지 가기에는 계단과 비탈이 있는 곳이 많아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차로 좀 더 올라가야 하지만 비교적 최근에 조성된 곳에서 4기의 유골함을 봉안할 수 있는 규모의 단풍나무를 찾아냈다.
두 시간 가까이 산을 타면서 보다 보니 자연목 사이사이에 가장 비용이 저렴한 나무들은 빈자리에 추가로 심은 단풍나무인 것 같았다.
광릉 산은 가을이 멋지지 않은가. 그렇다면 단풍이 좋겠다는 의견을 동생과 나누고 사무실로 내려와 계약금을 지불하고 예약을 마쳤다.
공원묘원처럼 돌을 돌리고, 잔디를 심지 않으니 관리비도 사용 후 5년 이후부터 1년에 5만 원만 내면 되고, 무엇보다도 사용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25년 후에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비용을 지불하면 계약에 포함된 4기에 추가로 봉안이 가능하니 우리 집처럼 손주 3명만 남는 집에서는 어른 6명이 한 나무 밑에 모이면 나중에 아이들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 모실 곳을 찾다가 내 묫자리까지 보고 오게 된 셈이다.
젊어서 묫자리를 미리 봐놓으면 잘 산다고 하던데 이제부터 진짜 잘 살면 될 일이다.
그래야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지.
저녁 면회시간에 다시 병원에서 동생과 모이기로 했다.
우리 형제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는데 각자 가정을 꾸린 후에는 그는 동쪽, 나는 서쪽에서 살다보니 아무래도 자주 보기도 힘들고 남자들이라 연락도 일이 있을 때 위주로 하게 됐는데 요즘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다.
옛날에 기아에서 봉고가 처음 나왔을 때 광고가 기억이 난다.
“봉고 덕에 다 모였구나.”
아버지 덕에 다 모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