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지우개 Jan 10. 2023

불안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져 머리가 무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땐 마음마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 심장도 불규칙적으로 뛰는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매우 불안하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 힘이 빠진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가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운동이나 집안일로 몸을 혹사한다.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짓을 하든지 결과적으로 나는 무기력하다. 영혼이 빠져가지 않기를 바라며 영혼 끝을 겨우 붙잡고 있는 모양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자고 싶어도 잠들 수 없다.     


힘겹게 숨 쉬는 이 순간도 꼬박꼬박 시간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니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 괜찮아질 거니까. 내 불안의 불꽃은 수명을 다해 사그라들었을 테니까. 나는 편안하게 불안해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불안하지 않다고, 아니 불안하면 안 된다고 나를 몰아세우면 내 불안의 불꽃은 더 활활 타오르니. 나의 불안이 먹잇감을 물었으니 나는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 다그침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최악을 상상하는 일이 나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내가 떠올리는 최악의 장면은 그런 일이 절대 벌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나의 기도였다. 나는 나를 도와줄 신을 누구보다 간절히 믿고 싶었고, 의지하고 싶었으며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추측한 선택지에 없던 차가운 현실은 신이 그다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신이라면 나도 외면하기로 했다. 내가 믿을 것은 오로지 나뿐임을 알았다. 불행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내 능력을 총동원하여 미리 그려보는 것뿐. 다행히 제법 효과가 있었다.      


그로 인해 나는 종종 불안하다. 노화 때문인지 불안을 잘 견뎌주던 감성마저도 탄성을 잃어가는 듯하다. 어릴 때는 큰 나무 밑에서 나뭇잎을 만지작거리거나 개수를 세거나 냄새를 맡았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느끼며 힘차게 뛰는 심장에 신경을 집중할 뿐이다. 나는 지금 생각이 많구나, 머리가 무겁구나, 마음이 힘들구나, 딱 이 정도로 불안을 인정할 뿐이다.     


곱게 늙지 않은 사람을 보며 나는 곱게 늙어야지 하면서도 스스로 곱게 늙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미래에 나는 나에게 ‘참 추악하게 늙었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늙은이가 어쩌면 가장 곱게 늙은 것이 아닐까. 내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불안을 증폭시키는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괴롭힐 바에는 차라리 ‘그래요, 저 엄청 불안하거든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라 댁이 맞을 수 있으니 저에게서 멀리 떨어지세요.’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나는 곱게 늙기는 틀렸다.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우아하게 바느질하는 할머니가 되어 손자에게 그윽한 미소를 짓기는 틀렸다. 나는 너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칠고, 무엇보다 불안이 깊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 좋다. 비는 음악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가 콘체르토라면 세차게 내리는 비는 오케스트라다. 비의 선율을 들으며 마음껏 불안할 수 있을 때 나는 참 편안해진다. 흐릿하게 숨길 수 있어 안정감이 있고 감추는 것마저 이상하지 않으니 자유롭다. 내일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비가 온다면 내 불안은 이내 고요를 찾을 것 같지만, 비는 분명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불안을 직시하고 응시하고 관조하며 어쩌면 조금 힘겹게 불안한 하루를 보내겠지. 그러나 불안과 헤어질 때쯤엔 나는 불안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가 아니라 ‘다시 만나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하리라.


여기저기 물건이 흩어진 내 책상에서 나는 불안으로 글을 쓴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혼자고, 앞으로도 항상 혼자일 것이다. 부디 타인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타인도 나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를. 불안의 소리가 내 목소리고, 그 소리는 나를 괴롭히다가 나를 쓰다듬는다. 변치 않는 사랑을 주는 엄마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삶다워지는 필요충분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