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행복의 기원]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을 읽고 씁쓸했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종종 우울하고 불안했다 생각하니 씁쓸. 우울과 불안의 원인을 내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으로 시원하게 떠밀어 버릴 수 있어서 편안. 그래도 나를 지배하는 부정적 감정이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얼마나 가벼웠는지.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아버지가 친구분과 놀러 가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고, 엄마가 이웃이나 친구에 대해 살갑게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도 없다. 두 분 다 타인과 함께하는 취미가 없다. 좋게 말해 두 분은 오로지 식구들의 부양만을 위해 사신 분이다. 부모를 탓하는 못난 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부모님이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고, 말이 가장 아프다. 고통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오래가고, 싫은 감정의 앙금은 시간조차 약이 되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은 상쾌함은커녕 넘쳐나는 찝찝함에 이불을 걷어차거나 한숨을 쉰 적 많았다. 그러곤 늘 다짐했다. 다음엔 혼자 놀아야지.
행복감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법륜스님의 이야기로 애써 행복을 이해하고 있었다. 별일 없이 사는 것이, 큰 어려움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금 고통스럽지 않으면 그저 행복이라는 스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던 까닭은 그래도 나의 행복이 유쾌하고, 신나고, 흥분되고, 즐거운 상태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행복은 다짐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달콤하지만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 같은 쾌감이라고 뻥 뚫리게 정리해 버리니 부담스럽던 행복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행복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니 나는 행복감을 자주 느끼지 못하더라도 생존하면 목적 달성! 나는 그저 살아있으면 된다. 큰 뜻을 품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업적은 남기지 못하겠지만 나는 동물로서 생존과 번식의 목적을 달성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됐다. 그런데 살짝 오기가 생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지만 ‘행복감? 니는 안 된다, 니는 이미 글렀다’ 단정해버리니 ‘나도 행복하고 싶다!’라고 온 힘 다해서 외치고 싶어 진다.
내 부실한(?) 행복의 더듬이를 바짝 세워본다. 남편에게 지기 싫어 시작한 수영이 언제부턴가 퇴근 후 첫 번째 일정이다. 피부가 물을 가르는 느낌이 부드럽다. 심장이 쿵쿵 뛰어 한기가 시원함으로 변하는 느낌이 쾌적하다. 수영을 마치면 골프연습장으로 간다. 짧은 클럽부터 긴 클럽까지 차례대로 공을 쳐본다. 열 개치면 두세 개는 정타에 맞아 경쾌한 타구음을 울리며 날아간다. 변비가 해소되는 듯한 해방감을 느낀다. 골프까지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특히 배가 고프다. 거침없이 마트 입구의 즉석조리식품코너로 향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연어초밥만 집어든다. 나는 음식에 큰 기쁨도 없고 실망도 없기에 내가 먹을 건 사지 않는다. 아들이 연어초밥을 보며 기뻐할 얼굴을 생각하니 흐뭇해진다. 연어초밥을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페달을 밟는다. 볼에 닿는 밤바람이 상쾌하다. 아들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 나는 어제 끓여놓은 김치찌개에 식은 밥을 말아먹는다. 내 요리 실력에 새삼 놀란다. 너무 맛있다. 뜨거운 물에 몸을 씻고 바르는 로션 냄새가 향긋하다. 골프로 아픈 왼 팔꿈치에 저주파 마사지를 붙이고 전기장판으로 데워진 침대에 눕는다. 포근하다. 잘 준비가 끝나고 잠들기 직전, 드디어 퇴근한 남편이 방에 들어온다. 그의 일정이 나의 일정과 겹치지 않는 훌륭한 타이밍에 감탄한다. 나는 이렇게 자주 행복하다,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빈번하고 강도 센 우울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싫어한다. 외롭지만 긴 시간 타인과 함께 있지 못한다. 밝다가 어두워지고, 말을 많이 하다가 말문을 닫아버린다. 흔들리는 나뭇잎도 슬퍼 눈물 나고 종종 형편없는 사람 같다. 지인의 연락처를 자주 지우고, 수신 차단도 어렵지 않다. 후회가 밀려오면 더 열심히 연락을 받지 않는다. 나를 안쓰러워하고 나를 걱정하다가도 내가 보기 싫고, 혐오스럽다. 분노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나를 괴롭힌다. 그래도 열심히 산다.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서, 평범한 삶은 유지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자 이 모든 못남을 참고 오늘도 나를 견딘다. 생존하고 있다.
오늘은 덜 힘들기 위해, 조금은 편하게 생존하고자 나는 소소하게 행복하기로 한다. 책을 읽으며 해 본 결심, 하루에 다섯 번 좋아하기! ‘아, 좋다!’는 말을 다섯 번 하기로 했다. 상큼한 사과를 먹으면서, 아기처럼 잠든 중1 아들을 깨우면서, 오늘따라 목소리가 큰 우리 반 아이와 인사를 나누면서, 부쩍 자란 강낭콩에 물을 주면서, 오늘따라 매끈하게 잘 그려진 내 아이라인을 보면서 아, 좋다!라고 말하기로. 좋은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좋은 점 이면에 숨은 복병을 애써 찾지 말 것. 작은 기쁨이니 뒤에 숨은 불안도 크지 않을 터. 불리하고 불편해서 무거웠던 내 유전자를 하루에 다섯 번은 짧고 가볍게 내려놓기로 한다.
이런 나를 생각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아직은 몇몇 있으니 나는 마음대로, 생긴 대로 살겠다. 맘껏 좋아하겠다. 행복하겠다. 생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