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다 부스러졌다고 생각했는데 몽글거리는 형체가 나타났다. 먼지 날리는 곳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곳이 폐를 아프게 하는 먼지투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기꺼이 한 선택이었기에 후회할 용기도, 그럴싸한 대안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부스러진 집에서 부스러기처럼 살다 보면 부스러짐도 예술이 되리라 믿으며 나는 혼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살았다.
처음 몽글거리는 덩어리가 쿵 떨어졌을 땐 기분이 나빴다. 내 먼지를 다 달라붙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오만함이 느껴졌달까. 감히 내 세상에 허락도 없이 뛰어들다니! 그리 가볍게 보이냐 따져볼까 하다가 저 끈적거리고 몽글거리는 것이 어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 덩어리는 자신의 몸을 요리조리 굴리더니 차츰 내 부스러기를 자기 몸에 다 붙이고는 이내 보송보송해져서 내 세상이 자기 세상인 듯 자유롭게 놀고 있다!
저 이가 와서 노는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좋았다. 건방지다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거듭 밀어내도 내 먼지들을 놀잇감 삼아 해맑게 뒹구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언제쯤 저 덩어리를 치워버릴지 지켜볼 뿐이었는데 차츰 싫지 않아 졌다. 내 먼지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꺼이 자신의 몸에 부스러기를 덕지덕지 붙이고는 못나진 자신을 좋아하는 모습에 솔직히 감동했다. 사실 나는 몹시 폐가 아팠고 무엇보다 부스러짐을 선택한 내가 싫었고, 위로가 필요했고, 이 먼지투성이, 흩날리는 나를 인정받고 싶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그러나 부스러기와 몽글이는 서로 어울리지 않고, 허락되지도 않는다. 부스러기는 부스러기끼리 몽글이는 몽글이끼리여야 한다. 그래야 다툼이 없고, 손가락질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부스러기는 특히 부끄러움에 취약하다. 더 부끄러워진다면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몽글이는 그 특유의 끈적거림을 항상 유지해야 하는데 제 발로 부드러워지는 순간 몽글이는 휙 굴러가 버려 아주 위험해진다.
나는 이 슬픈 결말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되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등져야 한다고. 곧 반대 방향으로 씩씩하게 걸어가야 끝내는 둘 다 살게 된다고. 해맑게 만난 것처럼 은은하게 헤어질 준비를 진작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너는 네 몸에 붙은 부스러기들을 다 떼야할 거라고. 나는 네가 떨구고 간 먼지를 먹고 다시 폐가 아프더라도 이전보다는 괜찮을 거라고. 몽글이가 내 안에서 반짝거리던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고마웠다고. 좋아했다고.
너도 나를 그리 기억해 주면 좋겠다. 해맑게 시작해서 은은하게 끝나던, 처음과 끝이 분명하던 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겠다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부스러기가 참 아름다웠다고 말해주면 어떨까.
추신. 부스러기는 몽글이가 떼고 버린 먼지 부스러기를 끌어모아 글도 많이 쓰고 그림도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아! 바느질도 하고 수도 놓았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되었고 꽤 오랫동안 행복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