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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Apr 16. 2024

꽃이 진 자리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나무는

꽃이 지기를 기다렸다     


꽃처럼 다가왔던 그 따슨 숨결들이

차갑게 돌아서는 그 순간을

꽃을 피워내는 내내

간절히 기다렸다    

 

꽃이 진 자리


부디 측은히 바라보기를

실컷 조롱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나무는 꽃봉오리를 열었다 닫는다     


모두가 돌아선 그 자리에 

누군가 다가와

나무 허리를 가만히 감싸고

꽃을 여닫느라 가쁜 숨과

숨을 맞추고 

어느새 절로 돋아난 연두의 번뇌들을

어여쁘게 쓰다듬는     


그 시간을, 그 누군가를 


꽃을 피워내고 그 꽃이 떠나가야만

만날 수 있는,

꽃 같던 시절 내내 서러웠기에

무성한 푸른 아픔을 

포근히 담아내는

그 사람을 기다리며

나무는      


하릴없이

꽃을 피우고 처참히 진다

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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