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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Aug 12. 2019

서프라이즈 하지 않는 어른

누군가의 책상에 마음을 두는 일

이어지는 스트레스로 식욕이 떨어졌다. 각종 이모티콘을 써가며 점약을 취소하고 자리에 앉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활자로 달려간다. (아... 변태인가?) e북을 켜고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났다.

13시부터 회의, 또 회의, 또또 회의를 이어가다 겨우 자리에 앉았다. 후배가 닭가슴살을 데워 내 자리에 올려두었다. 사탕도 두 알 놓고 갔다. 배고프지 않고, 나는 괜찮다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누군가의 책상에 무엇을 놓고 간 적이 내게도 있었다. 아주 옛날에. 지금의 나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이란 피곤한 일의 범주에 속해있다. 모름지기 선물이란 상대가 필요로 할 때, 정확하고 확실하게 건네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긴다.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귀엽고 아기자기한 기념품 산 뒤, 터질 것 같은 트렁크에 꾸역꾸역 넣고 왔다 해도, 그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받으면 그냥 예쁜 쓰레기일 수도 있다. 괜히 고마운데 불편하고, 기대했는데 반응에 서운한 일은 피곤하다.

나는 나를 위하고, 너는 너를 위하며 각자 행복한 우리가 만나 즐겁자는 생각을 한 뒤, 누군가를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됐다. 기대하지 않고, 반대로 누군가의 기대에 충족하려 애쓰지 않았다. 혹 누군가 떠올라도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내심 바라게 되는 무언가를 경계하고, 그로 인해 표현하지 못하는 서운함을 탄생시키지 않으려 했다.그러는 사이 꽤 깔끔하고 산뜻하게 선을 지키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뜨거운 닭가슴살을 손에 쥐자 후배가 온다. 젓가락을 흔들며 어서 빨리 오란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그런데 어서 빨리 먹으라는 모순적인 요청을 한다. 먹기 좋게 찢어진 그것들을 하나씩 입에 넣으니 달콤했다. 팽팽한 긴장들이 녹아내렸다. 나는 오물거리며 미뤄둔 이야기를 듣고, 그는 무언가 먹는 나를 보며 마음 속 말을 한다. 아주 작은 무엇이 몹시 충분했으며 더할 나위 없이 따듯한 찰나였다.

나는 여전히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봉인해제된다.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자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나는 적정한 차가움으로 제 속의 것을 보호하는 냉장고 같은 상태가 되고 싶었다. 남일은 시야 밖으로 밀어버리고 신경끄는 사람으로 살고자 했다. 반대급부로 점점 표현하는 근육이 무뎌지고, 서프라이즈 없는, 회사생활 하기 딱 좋은, 예측가능한 어른이 되어가는 걸 기꺼이 허용했다.


그러나 이리 노력해 놓고도 가만두면 내 마음은 나침반처럼 언제 어디에 놓든 따듯한 쪽을 향한다. 하고 싶은 것과 본능적으로 잘하는 것이 다를 수 있는 건, 비단 직업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도 적용된다.





지금 듣는 노래 옥상달빛 <옥상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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