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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Aug 13. 2019

목표는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

지난 영광과 게으름을 모두 잊고


1년 만에 요가에 복귀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1년 단위 회원제 시스템이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지불한 그다음 날부터 부지런히 요가원을 다녔다. 꼬박 한 달에 15회 운동을 했다.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시작빨로 몇 개월만 부지런히 다니다 이내 학원의 기부천사가 되는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 부지런함은 1년 내내 이어졌다. 처음엔 설렘, 낯선 것을 배우는 즐거움과 지불 의무감으로 출석했으나 열심히 다닐수록 몸이 달라졌다. 어떠한 도구 없이 매트와 나의 심플한 관계 맺기, 춤추듯 우아한 동작 속에 호흡으로 근육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 운동신경이 좋은 나는 어떤 난이도의 요가 클래스에서도 우등생이었다.

연이어 1년을 더 결제를 했다. 당시 나는 내 우월함에 조금 취해있었다.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가 풀숲에서 낮잠을 자듯 게으름을 피기 시작했다. 한 달에 10번으로, 5번으로, 3번으로 출석이 줄었다. 아침 출근길, 오늘은 꼭 요가를 하겠다고 결심해도 저녁 퇴근길, 모르는 척 요가원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배고프니까, 약속 있고, 어제 술을 먹었고, 기분이 좋으니까, 안 좋으니까… 핑계는 차고 넘쳤다.

기부천사로 머물다 복귀했다. 쫀쫀한 근육은 말캉한 살이 되었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던 동작들은 이제 곁눈질로 올바름을 살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손쉽던 차투랑가도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훈련된 몸의 감각들이 무뎌졌다.

내가 보낸 게으른 시간을 정직하게 마주해야 했다. 여전히 내 기억 속의 나는 아쉬탕가 모든 시퀀스를 해내며 머리서기로 파이널을 한다. 그러나 현실 속 나는 예전만 못하고, 서툴고, 우월하지 않은 후퇴한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을 피하고 한 때의 영광만 남기고 싶었다. 또 다시 요가원에 휴원하며 도망쳤으나 3주만에 결국 나는 또다시 나를 요가원에 데려다 놓았다.

이제 내 목표는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다. 오늘의 내가 그냥 해야, 내일의 내가 ‘잘’이라도 해볼 여지가 있다. 어제의 영광이 오늘의 나를 주저하게 만든다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떨쳐내고 포동하게 살이 오른 진짜 나를 마주해야 한다. 오늘은 배고프지만, 약속이 있지만, 어제 술을 먹었지만, 기분이 좋지만, 좋지 않지만! 그냥 하자. 잘했던 나와 게으른 나를 모두 흘려보내고, 오늘부터는 그냥 닥치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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