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멋있소이다.

by 여니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은 솔직히 합치자마자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옆지기의 사기와 송사로 때로는 가파른 산을 넘어야 했고, 또 그 산 너머에는 더욱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손을 잡고, 마치 한 몸처럼 고개를 넘어왔다. 앞으로도 또 다른 산이 우리 앞을 막아선다 해도, 우리는 분명히 그 길을 함께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오래, 너무도 가까이 함께했기에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작은 서운함도 더 크게 다가오고, 사소한 고마움도 가슴 깊이 파고든다. 그 모든 감정이 우리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더 깊게 만들어 주는가 싶기도 하다.



중학교 시절 동창이자, 나의 삶을 함께 엮어온 그리고 이어갈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그가 백혈병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그 병을 옆지기만의 것이 아닌 우리 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곁을 지켜왔다. 스스로 자부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책 읽기와 글쓰기에 고통을 가리고 진심으로 꼿꼿한 그의 모습 속에서 내가 되려 진정한 용기를 배웠다.



우리는 성격이 거의 반대이다. 닮은 점도 많지만... 아픔 속에서도 웃음을 찾아내었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들었다. 그것이 부부라는 이름의 힘이자, 우리가 함께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만들어 온 기적 같은 삶이다. 앞으로 남은 날들도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믿는다. 그 어떤 산도 또 넘을 것이고, 그 어떤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어젠 정말 오래간만에 덥수룩한 옆지기의 헤어컷을 했고 눈검사와 우리 눈에 맞는 돋보기를 삼만 원에 행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언제나처럼 나를 이끌었다. 원래는 둘 다 같이 하기로 했지만, 그냥 난 다음으로 미루었다. 옆지기는 계속해서 "당신도 해. 당신 안 하면 나도 안 할래. 함께 하기로 하고 왔잖아~" 했지만, 난 고집을 부리고, 다음으로 미루고 시력검사만 했다. 역시 왼쪽 눈의 난시가 좀 심해 어지럽거나 번져 보일 거라고. 옆지기만 하는데 끼워서 저까지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연실 했다.



얼마 전부터 나는 글이 여러 개로 번져 보이고

옆지기는 하얗게 보이고 좀 안 좋은 것 같다... 했다. 잘 참는 이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심각한 것임을 알기에 좀 겁이 났다. 그 성격에 동갑이지만 이 사람을 이기지 못하기에 살이 그렇게 빠져도 미루고 미루다 백혈병도 안 좋은 상태(가속기)에 발견했기에. 포도막염은 이미 나 만나기 전 자가면역질환일 때 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백내장이라 한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 면역이 아주 안 좋은 상태라서 독감. 대상포진등 어떤 백신도 맞을 수가 없다.



지금 겨우 1차 타시그나 , 2차 스프라이셀 항암 실패 후, 적혈구 2팩 혈소판 1팩 백혈구 촉진제까지 일주일에 두어 번씩 3~4시간을 맞으며 겨우 겨우 수치를 끌어올리고 맞추고 해서 지긍은 3차 신약 셈블릭스로 항암 중이라, 이번 병원 가는 날에 여쭙고 안과 협진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그동안 싸서 그냥 썼던 돋보기 말고 어제 맞춘 안경(돋보기지만)을 쓰고 갤럭시 5로 글을 또 쓰고 있는 옆지기를 애교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내가 한참을 웃으며 바라봤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

"멋있지? 머리도 자르고 안경도 새로 쓰니. 흥.." 하고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옆지기가 짠하면서 이게 부부이자 동지이구나 싶었다.






그래.

멋있소이다.



* 오늘 아침의 박 스테파노.

* 2017년 이렇게 아득한 산일 줄 몰랐던 여름의 우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위치를 잠시 끄는 일은 더 오래 켜 있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