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래 Jan 24. 2024

수영장 수강신청, 그게 대체 뭐라고

화(火)는 수용성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고, 안 떨어지려는 아이를 눈물로 떼어내야 했던 복직 첫 달, 나는 울지 않으려 다짐했지만 자주 눈물이 났다.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 때문이었냐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아주 아닌 건 아니다..!) 물리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생리적인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오래 맡겨 두었다는 죄책감에, 퇴근 후 아이가 잘 때까지 부러 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아이와 놀아주었다. 남편이 놀아주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 아무도 주지 않은 죄책감과 부담감을 혼자 땅속에서 캐내서 발목에 모래주머니 마냥 덕지덕지 채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체력적 한계로 9시경, 나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거나, 어떤 날은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거나, 가끔은 아이보다 먼저 잠들기도 했다. 그런 날은 다음날이 또 괴로웠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지만, 또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체력을 길러야겠다.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 피곤함과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에게 무심결에 짜증을 심하게 낸 날, 그날은 바로 수영을 등록하고자 마음먹은 날이었다. 바로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전기자전거가 우연히 이끌었던 수영장으로 향했다.


"신규접수기간이 언제죠?"

"기존회원 접수는 이번 달 21일부터구요, 신규회원 접수는 25일부터에요"

"아아 네,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되죠?"

"예? 아니요 현장접수만 가능해요. 5시 40분까지 오셔서 빈자리 접수하시면 됩니다"

"네?? 오후 다섯 시요???"

"네?? 아니요 아침 다섯 시요"


아이를 낳고 am과 pm이 의미 없는 생활과 소아과 오픈런을 1년 가까이해서 조금 익숙해졌지만, am 5시 40분에 수영장 오픈런이라니. 게다가 덧붙여진 말은 더 놀라웠다

"네 근데 보통 보면 한 네시반쯤부터 줄 서기 시작하세요!"


서로 "네?" "네??" "네???"를 되묻는 이상한 대화를 반복하고 나서 '이쯤 되면 나만 빼고 다 수영을 하거나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사실 왕년(?)에 수영을 좀 해봤기에, 수영장 등록의 룰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영장은 매달 21일쯤 3~4일간 기존 회원의 재등록 신청을 받고, 25일쯤 남은 to에 한해서 신규회원 접수를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온라인 수강신청 시스템이었으므로, 시간 맞춰 광클에만 성공하면 큰 어려움 없이 수강신청에 성공할 수 있던 터였다.


 그러나 현장접수는 얘기가 달랐다.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 네시반에, 차를 타고 와서, 한 시간가량 줄을 서서 기다려서 접수하는 시스템이라니. 그마저도 앞에서 to가 마감되면 등록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니. 심지어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돈을 내면서까지 이렇게 할 일인가? 괜히 심통도 났다.


 자기 파괴적인 굴레를 끊어보고자 기껏 마음먹은 날, 그리고 체력을 키워 마음의 맷집을 키우자 다짐한 그날, 남편과 출퇴근 일정까지 조정해 가며 새벽수영을 다짐한 그날, 그러나 어렵게 먹은 마음을 실행에 옮기기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원래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가 아니던가. 갑자기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고작 하루 50분 수영도 못 하는 신세가 된 건가 싶고, 비약과 피해의식은 자꾸만 몸집을 키워갔다.



 복직하자마자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아직 얼굴도 익숙하지 않은 팀장님에게 장문의 문자를 작성할 때, 곡괭이 하나를 들고 양 발에 모래주머니를 찬 채 약 20겹의 벽을 뚫고 나가야 하는 밸런스 붕괴 게임의 플레이어가 기분이 들었었다. 내가 가진 건 곡괭이 하나뿐인데, 벽을 뚫기는커녕 앞으로 나아가기나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겁이 났다.


 겨우겨우 입원한 아이의 열이 내리고, 기침이 멎어갈 무렵, 시련은 더 찾아왔다. '아이의 모든 병은 엄마가 아파야 끝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24시간 아픈 아이를 수발하다 보면, 아이가 나을 때쯤 엄마는 아프기 시작한다. 최악의 컨디션인 엄마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날아다니는 아이를 케어하다 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신의 형벌을 받는 느낌이 든다. 그나마 갖고 있던 곡괭이마저 뺏기고 맨몸으로 세상과 맞짱 뜨는 기분이랄까. 퇴근과 동시에 병원으로 출근하며, 나는 그렇게 워킹맘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중이었다. 곡괭이를 빼앗긴 워킹맘(Lv.1)은 아주 작은 것에 예민해지고, 마음은 그것보다 더 작아졌다.



그러나 의외로 수영장 신규등록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고, 나의 분노는 싱겁게 해소되었다.


"어? 나도 거기 수영 다니는데! 잘됐다 같이 다녀요! 나 어차피 새벽에 수영하니까 내가 줄 서줄게요"


 예전에 얼굴만 알고 지내다가 복직하며 같은 팀이 된 J과장님이었다. "엇 진짜요? 감사해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세상을 향한 분노를 슬그머니 거두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분노는 분노를 위한 분노였다는 것을. '까짓 거 한 번인데, 4시 30분에 일어나서 나오면 되지. 안 되면 다음 달에 도전하면 되지' 과거의 나였다면 쿨하게 생각했을 텐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꽂혀서 곡괭이가 어쩌고, 모래주머니가 어쩌고 하며 분노했다. 나를 속박하고 옭아매는 것은 '이것도 하고 있고, 저것도 하고 있는데, 또 이것도 해야 하고, 나아가 저것도 해야 하는 나'였다. 말하자면, 지금 너무도 바쁘고 작아져있는 내 마음이었다. 세상을 향해 화낼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어느 것에도 화를 내기가 녹록하지 않았던 나는 애먼 수영장에게 분노을 응집하여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가장 큰 딜레마는 "내가 낳은 이 작고 소중한 생명체에게 화를 내다니"라는 마음과 싸우는 일이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사람인 이상 한 시간 넘는 울음과 짜증에 "대체 왜 그러는 건데!!"라는 마음이 드는 게 (그리고 가끔은 표현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나보고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 방어처럼 혹은 주문처럼 "아 아직 애가 어려서요"라는 말을 먼저 꺼내곤 했다. 혹시나 끼칠 민폐에 대비하여 항상 조바심내야했고, 갑자기 아이 때문에 휴가를 써야 하거나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될까 봐 평소에도 과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 불안과 분노오갈 데 없이 쌓여만 가던 와중, 때마침 만만한 (큰 노력 없이 갈 수 있는, 그러나 못 가게 돼서 어이가 없는!) 수영장이 잘못 걸린 셈이었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만만하게 화를 낼 대상이 필요했고, 나는 내가 왜 화났는지도 모른 채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의 안전핀이 되어준 건 J과장님의 아주 작은 호의였다. 천성이 다정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 J과장님은 같은 워킹맘으로서의 비애와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선배 워킹맘이었다. 아픈 아이를 돌보다가 수척해진 나를 위해 마사지 이용권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심심찮게 저녁에 회식을 빙자한 소모임을 열어 육아스트레스를 반강제로 날릴 수 있게도 해주고, 생일엔 미역국과 갈비찜도 직접 만들어주고, 일적으로 일 외적으로 선배로서 동료로서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었다.


 처음 J과장님과 주로 했던 이야기는 아이 얘기였다. 출산 및 휴직 후 내 세상은 오직 아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차차 회사 이야기, 회사 사람들 이야기, 나의 이야기, 가족 이야기, 세상 이야기로 대화주제와 저변은 확장되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 가둔 '워킹맘 프레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일상이 조금씩 즐거워졌고, 퇴근 후 육아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겨갔다. 아이가 가끔은 혼자 놀아도 내버려 둘 줄 아는 요령이 생겼고, 밥을 먹지 않는 날엔 '그래라 배고프면 먹겠지'하는 여유도 생겼다.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는 육아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아이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며 멘탈을 다잡아나갔다.



"아니에요! 제가 줄 서서 등록하면 되죠!"


 호기롭게 대답한 나는 수영장 신규등록 당일 네시반에 일어나서 다섯 시쯤 수영장에 도착했다. 이미 계단 아래까지 쭉 늘어선 줄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다행히 새벽 6시는 핫한 시간대가 아니었는지 고급반에는 꽤 TO가 남아있었고, 큰 무리 없이 등록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음 달 1일, 나는 5시 20분에 일어나서 속옷만 갈아입고 졸린 눈으로 시동을 걸어 수영장으로 향했다. 자고 있는 아이의 표정을 한 번 살피고, 살짝 잠이 깬 남편의 다리 혹은 팔을 한 번 꽉 잡으며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샤워장 여기저기 위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샤워를 하고 있는데 부스스한 머리의 J과장님이 나타났다. "왔어요~?" 반갑게 웃어주는 그의 표정이 새삼 다정했고, 오래전부터 이 수영장에 다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어깨정도가 되는 물까지 몸을 담그고, 글라이딩을 시작했다. 수영할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벽을 붕- 차고 앞으로 나가는 느낌. 그것만으로 많은 것들이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FIN.

매거진의 이전글 수영하는 워킹맘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