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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신 Apr 15. 2024

노년의 성숙과 임사체험

 지난여름, 도봉구에 사는 지인에게서 ‘열정대학’ 개교식이 열리니 축사를 부탁한다고 요청이 왔다.

열정대학’은 도봉구의 한 아파트 경로당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지인이 내게 축사를 부탁한 이유는 “최근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여성으로서 노년들에게 용기의 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나보다 인생 선배인 분들에게 격려의 말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용감하게 도전해 보자. 나도 혼자 가는 산티아고 길이 처음에는 무척 불안했지만 결국 혼자서 해냈다.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자. 여러분을 응원한다”며 간단히 축사를 마쳤다.


 오래전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시어머님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노년의 혼자 사는 삶의 절대적인 고독, 사무치는 고독감이 깊이 전해져 왔다. 어른을 더 가깝게 모시지 못한 반성이 들었다. 시어머님은 자식들에게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셨을까?  열정대학 할머니들은 유언집을 만들어 세상에 하고 싶은 말과 마지막 인사, 재산을 정리하고 원하는 장례식 풍경도 토론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니 오래전 내가 경험한 임사체험이 생각났다. 임사체험, 죽음에 임하는 이벤트이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어 체험을 망설였다. 막상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자 밖에서 관뚜껑이 닫혔고  그 후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온 주변이 캄캄해졌다. 다행히 소리는 다 들렸다.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기왕에 갈 것, 미련을 남기지 말고 가자. 속히 가자.’ 만약 정말 죽었다면 밖에서 울고불고 야단법석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속히 가자’는 생각이 시간이 흐르며 강해졌다. 만약 누군가 밖에서 회한 속에 나의 영혼을 붙잡는다면 내가 가볍고 한갓 지게 떠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기쁘고 가볍게 나를 보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한층 강하게 들었다. 관속에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렇게 다시 관뚜껑이 열리고 밝은 햇살을 마주했다.   

그러나 나는 관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죽음에 대한 인식의 큰 변화를 겪었다. 두렵기만 한 죽음에서 한 발자국 벗어났달까? 여기에 미리 작성한 유언집을 통해 망자의 소신과 철학이 한마디라도 후손들에게 더해진다면 우리들의 노년은 또 하나의 멋진 성숙의 과정이 될 것이다. 노년의 소신과 철학은 뜻밖의 큰 울림을 지 않을까?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1년의 의미는 다르다. 생후 1년은 갓 태어난 아이가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두 발로 서는 기적의 시간이다. 하루하루 변화가 얼마나 경이로우면 생후 1년은 연 단위로 세지 않고 월령으로 셀 것인가? 그러나 청년, 중년을 거쳐 노년이 되면 서서히 무료한 삶이 이어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 없고 작년과 올해가 다를 것이 없는 고요하고 지루한 삶이 이어진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지루한 노년들의 시간에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만들어 내는 것. 그 파문이 인생의 의미 있는 무늬로 이어지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회한만 남은 과거를 추억하기보다 오늘 현재와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의 삶을 새롭게 구성해 보는 것, 삶과 죽음, 나와 가족 등등에 대해 새롭게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한 노년의 과업이다.

 요즘 같은 봄날엔 할머니들이 꽃구경을 다니느라 결석이 잦다던데 열정대학 할머니들이 지난 1년간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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