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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공작소 Jun 20. 2022

욕심꾸러기는 나쁜 건가요?

이유 있는 욕심꾸러기의 외침

어릴 적 기억 속의 나는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게 분명한 아이였나 보다.

유치원 졸업식 사진을 찍던 날 색동저고리를 가져와서 한 명씩 사진을 찍는데 선생님께서

다른 친구가 한복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빌려주자며 어린 나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시고 가져가셨다.

내 딴에는 그것이 나름 화났나 보다. 어릴 적 내 졸업사진의 나는 삐죽 빼죽한 단발 머리칼을 하고 두 눈에 힘 빡 주며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지금 보면 빵 터지지만 그때 내 심정은 어땠을까?

어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나누어야 당연하고 욕심부리는 것은 나쁜 거라는 메시지가 강압적으로 느껴졌던 것 아닐까? 욕심, 사전상으로는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욕심을 너무 허황되게 부리는 건 분명 문제가 되겠지만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 내 것이 소중하다는 마음이 있어야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그리고 40살을 살아보니 느끼는 건 가만히 있으면 그냥 가마니가 된다는 것.

불만이 있으면 싫은 티를 내고 목소리를 내야 세상은 조금 들어줄까 말 까다.

들어줄까 말까 한다고 쉽게 포기해 버리고 속으로 참기만 하면 속에서 곪는다. 욕심꾸러기는 안된다고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소수의 의견은 무시되는 사회의 룰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람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신념이라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 유치원 선생님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즉각적으로 몸이 움직이셨던 게 아닐까?

한복을 빌려주는 것쯤 별거 아니고 친구가 입으면 친구도 좋고 너도 좋은 거야. 그래야 졸업사진을 모두 찍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셨을 지도.

어린 나의 생각을 상상해 보니 준비 못해온 친구 것까지 왜 내가 생각해야 하죠? 저는 제 것을 공유하기 싫은걸요. 아무리 선생님이어도 제 허락을 받지 않으시고 친구에게 옷을 빌려주신 것은 잘못이어요.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나는 생각을 곱씹는 것을 좋아라 한다. 마치 소가 여물을 입에 넣고 씹고 또 씹는 것 마냥..

그때는 싫었던 것들이 왜 그랬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순간 다른 면이 이해가 된다.

이해하지 않은 것과 이해한 것은 별거 아닌 듯 별거인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한 끗 차이 같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다른 것처럼……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무늬가 다르다. 한쪽은 백원 이라고 한글로 적혀있고 한쪽은 숫자로 100이라고 적혀 있다. 한글로 백원 이라고 적혀있는 면에는 이순신 장군님 그림도 그려져 있다.

앞면 뒷면 모두 백원 이라는 정보는 똑같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깨닫지 못함에서 오는 답답함이 있을 수 있다. 왜 그럴까 곱씹고 다른 면을 보며 깨닫는 순간 마음이 열린다.

유치원 선생님이 친구가 한복 없이 사진을 찍으면 친구 마음이 아플 거야 라고 한마디만 하셨더라면 나도 이해하고 마음을 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을 지금에 와서 비난하고 싶은 마음보다 선생님도 아이들의 마음을 일일이 헤아릴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었나 보다고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글로 남겨두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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