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발음이 중요한 건 아니지..
엄마, 발음 진짜 이상하다, 나 따라해 봐봐 ?
"엄마, 발음 진짜 이상하다. 그렇게 하는 것 아니야. 나 따라 해 봐 봐?
거어얼, 쥐저스, 유니코온"
한국 나이로 7살, 이제 겨우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의 딸이 나에게 훈계한다.
열 번을 따라 해 보아도 틀렸단다. 도저히 딸의 기준에 못 맞추겠다 싶어서 변명을 시작한다.
"엄마는 어렸을 때, 너처럼 영어 친구도 없었고 외국인 선생님이 없어서 발음을 이상하게 배웠어. 이제 나이가 들어서 지금 고치려고 하면 잘 안돼 "
딸이 그래도 나한테 용기를 북돋아 준답시고,
"그래도 아빠보단 잘해"
"그래? " " 왜 그렇게 생각했어? "(안면 웃음 가득)
"어, Sorry 할 때 보면 엄마가 더 잘하더라고 "
헉.... Sorry를 워낙에 많이 해서, 아이가 그리 느꼈나 보다.
미국에서 젤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 Thank you, Excuse me, I'm sorry "
아이랑 있을 때 내가 젤 많이 쓰는 영어 중에 하나라서.. 완전 안습일세.
처음 여기에 와서, 입을 떼기가 두려웠던 시절, 누군가가 한 말이 생각났다.
" 음감이 좋은 사람은 언어도 잘해. 너 음악 잘하니까 금방 영어도 늘 거야."
이 말에 용기를 얻었고, 문장 구사력은 몰라도 발음은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딸이 비록 'Sorry' 이긴 하지만 내 발음이 영어 공부를 나보다 훨씬 오래 한 아빠보다 낫다고 말해 주었다. 야호.
집에서 남편한테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항상 남편에게 영어실력으로 은근히 무시를 당하고 있어서인지 내 편을 들어주는 딸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따님이 글쎄, 자기보다 내 발음이 좋다네?"
요즘 한창 프레젠테이션 연습에 한창인 남편은 영어 자신감이 필요한 시기였다. 아차, 이것을 간과했다.
"말도 안 돼, 너 진짜 발음 이상한데."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발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발음만 좋으면 뭐하니, 문장 구사력이 없는데."
딸의 의미 없는 말 한마디를 전했다가 제대로 팩트 폭격당했다.
사실 그 말이 맞다. 남편 말대로 발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발음이 좋으면 의사소통이 더 원활하게 되기는 하지만 발음만 좋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악센트가 굉장히 강한 인도 사람, 베트남 사람의 영어. 나는 그들 말이 너무 안 들려서 힘들고 대화가 이어지기 어려운데 문장 구사력이 훌륭하다면, 미국 원어민들은 콩떡 같은 그 발음도 찰떡같이 다 알아듣는다. 오히려 미국인들의 발음을 흉내내지만 콩글리시를 구사하고 있는 내 말보다 그들 말을 더 잘알아듣는다. 발음이 원어민처럼 좋은 사람이 제일 영어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제사 나는 안다.
그래도 여전한 속마음은 발음이 좋았으면 좋겠다. 내용은 별로여도 영어가 그럴싸하게 들렸으면 좋겠다. 속은 비었지언정 얼굴은 이쁜 사람이라도 되고 싶다.
어릴 때 토종 한국인의 영어 발음을 들으며 공부한 토종 한국인의 발음 교정, 어렵고 어렵도다. 굳어져 버린 이 혀를 어찌할꼬. 어떤 유튜버 강사께서 혀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연습하면 된다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