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삶과 함께.
어떤 대화는 맥락 없는 아무 말로도 즐겁다. 대화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소리를 주고받는 수준이라 정말 개소리란 표현이 적확할 수도 있다. 그 개소리의 연속이 항상 생각 많은 나를 편히 웃게 했다.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날 웃게 해주는 사람이라 함께 하기로 했다'는 연예인들의 흔하디 흔한 공개 열애 고백 속 문장이 무슨 뜻인지 알게 했다.
어떤 대화는 마음에 불을 지핀다. 상대에 대한 불같은 애정을, 한 인간으로서 더 나은 이로 서보이고 싶은 강한 욕구를 일으킨다. 그런 대화엔 맥락 없이 말 같지 않은 소리보다 공감과 격려 같은 진짜 말이 필요하다. <사랑의 몽타주>를 쓴 최유수 작가는 이걸 '언어 섹스'라고 불렀는데, 내게도 이 대화가 너무 좋아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고 바랐던 때가 있었다.
요즘 나는 주로 맥락 없는 아무 말의 잔치를 벌인다. 마음에 불을 지피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대개 없다. 나 역시 그럴 만한 체력도 의지도 없다. 가끔 술의 힘이나 빌려볼 뿐이다. 그러다 문득 학생이던 때에 썼던 글과 친구나 연인과 나눴던 메신저를 들여다보면 그때 내가 스스로와, 또 누군가와 치열하게 나눴던 그 불같던 대화가 그립다.
정말 그리운 이유는 일상의 쳇바퀴 속에 찌든 바보가 될까봐 무서워서다. 남들처럼 열심히 사느라 남과 달리 내가 무얼 좋아하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가치를 좇는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까 봐 경계한다. 무거운 걱정이 마음을 채운다. 이럴 때 잠깐 삶을 가볍게, 시간을 휘발시켜주는 대화가 틈을 비집고 들어오면 좋겠다. 이 어떤 대화들의 균형을 삶만큼 맞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