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환경

by 청리성 김작가
할 수 있다면.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구별해야 하는 것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할 줄도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랑받는 좋은 느낌을, 언제 받는지 안다는 말이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할 때나 행동을 할 때 그리고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지 안다. 그래서 사랑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모습을 비난하기보다, 사랑받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겨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생각의 중심이 명확하게 자리 잡으면 환경의 영향을 덜 받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보이고 들리는 것을 전부로 생각하게 된다. 축구 강국으로 유명한 나라의 골목 풍경을 보면, 곳곳에서 아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하는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그러니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모습이 축구 강국이 된 절대적인 이유라 할 순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환경의 중요성을 말할 때 제일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는, ‘맹모삼천지교’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교육을 위해 3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묘지 근처에서는 곡소리 내는 사람의 흉내를 내고, 시장 근처에서는 장사하는 사람의 흉내를 낸다. 그래서 결국 서당 근처로 이사를 한다. 서당 근처이니, 자연스레 글 읽는 흉내를 내게 된다. 그렇게 맹자는 위대한 사상가가 된다. 어릴 때는 특히, 보이고 들리는 대로 행동하게 되니, 환경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폭력성이 강한 사람을 보고, 원래 폭력성이 강한 사람이라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폭력성 짙은 사람이 된 이유는,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행동의 결과를 좋게 포장할 순 없다. 다만, 그렇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만약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과연 폭력적으로 되지 않았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은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 굶주린 환경에 처하다 보니, 생존하기 위해 한 조각의 빵을 훔쳤다. 약자에게 사회의 잣대는 너무 냉정했고, 그 계기로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을 키우게 된다. 처절한 굶주림 속에 처해있지 않았다면, ‘장발장’은 아마 빵을 훔치지 않았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결과와 책임을 환경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 피해자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줄 수 있다면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내가 그 환경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본인의 의지로 환경을 벗어날 수 있다면, 좋지 않은 환경을 이기려 하지 말고,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나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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