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면 두려움이 되지만, 품으면 용기가 되는 마음
막연함은 밀어내려 하면 ‘두려움’이 되고 품으면 ‘용기’가 된다.
막연하다는 것은, 낯설거나 상식의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을 때 느껴지는 마음이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거다. 사전에서 말하는 정의를 봐도 그렇다.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아득하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막연함을 처음 마주하면, 당황스럽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나 모습 때문이다. 당황스러움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밀어내거나 품어야 한다.
이른 아침, ‘영종대교’를 건널 때가 떠오른다.
영종도로 들어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매우 긴 다리로, 날씨가 좋을 때는 가슴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지만, 안개가 잘 끼기로 유명하기도 하다. 그날도 짙은 안개가 깔린 날이었다. 안개 낀 도로를 운전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날의 안개를 상상을 초월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라는 말 그대로였다. 구름 속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2015년, ‘영종대교 106중 추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개가 꼈으니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운전했으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운전하면서, 무섭다는 느낌이 들고 온몸의 신경이 바싹 곤두서긴 처음이었다. 상체를 핸들에 붙이다시피 해서, 앞을 유심히 보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앞을 유심히 봐야 하는 것도 신경 쓰였지만, 혹시 뒤에서 누가 들이받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다리를 건너는 그 시간이, 그렇게 긴장될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다리를 거의 건넜을 때 조금씩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안개가 흩날리듯 걷히면서, 평소에 보던 모습의 도로를 보는데, 속이 다 시원했다. 잠깐이지만 긴장을 하고 집중해서인지,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경직돼 있었고, 피로감이 확 밀려왔다.
도로의 짙은 안개처럼, 막연함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가지 않거나, 뚫고 지나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 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지 않는 것은, 막연함을 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막연함과 거리를 두면, 마음에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된다. 막연함을 받아들이고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밀어내면, 그 자리에 용기가 자리 잡게 된다.
어린 시절, 쓰디쓴 약을 마주할 때를 떠올려 본다.
마주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약을 먹기가 두려워진다. 쓰다는 느낌을 생각으로 되뇌면서 마음을 괴롭힌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입에 털어 넣은 다음, 물 한잔 꿀꺽 삼킨다. 잠깐의 쓴맛이 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사라진다.
막연함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걱정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된다.
막연함을 용기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품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거다. 영화 <명량>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가 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의 마음을, 용기로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다. 그 방법으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자신이 죽음으로, 병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막연함을, 두려움이 아닌 용기로 품는 건 사실 어렵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두려움은 피할수록 그리고 거리를 둘수록 더 강해진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삼켜야 한다. 눈 한번 질끈 감고, 꿀꺽 삼켜보는 거다. 생각보다 쓰지 않은 약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을 만드는 건, 어쩌면 내 상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