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두려움

by 청리성 김작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거나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으로 생기는, 어둠의 마음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가, 온전히 진실할 수 있을까?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해(利害) 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람이 그냥 만나고 함께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남 그 자체가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식사 자리 나 술자리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한 마음이나 부탁하는 마음을 목적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하는 만남이다.


학창 시절에 만났던 친구는 그렇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때 친구들을 하나둘씩 떠올려본다. 자주는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만나는 것 자체가 좋고 반갑다. 약속해서 만나기도 하고, 한둘이 모였다가 연락해서 번개로 만나기도 한다. 한참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 카톡에서 생일이라고 알려주면, 그 핑계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만남에는,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싶은 게, 목적이라면 목적이고 이유라면 이유다. 이야기하다가 내가 필요한 것을 부탁할 때도 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슴없이 해주겠다고 한다. 대가 없이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어른들이 자주 하신 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친구는 학창 시절에 만나게 된다고.


사실 필자는, 그 말씀에 반박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사회에서도 충분히,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이다. 쉽지 않았지만, 몇 명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거래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다. 거래를 통해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거래처인 분도 있고 협력업체인 분도 있다. 지금은 거래하고 있진 않지만, 가끔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거나 연락해서 만나기도 한다. 그냥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가 도움을 받았던 분도 있고, 도움을 줬던 분도 있다.

그렇게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떠나, 그냥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참 고맙다. 관계의 고리가 없어졌음에도, 사람의 관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말이다.


사회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서로의 관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리더에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내가 책임질게. 나만 따라와.”라고 말한다. 팔로워 위치에 있는 사람이, “책임 지실 거죠?”라고 묻는다. 전자의 경우, 어떻게 보면 매우 책임감 있게 느껴진다. 후자의 경우, 리더를 매우 신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두 마디는 결코 성사될 수 없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누구에게 자신을 맡겨서도 안 된다.

서로 기대는 모습으로 가면, 절대 서로의 관계가 온전하게 설 수 없다. 사람인(人)의 모양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서로가 온전히 홀로 서지 않고 서로 기대기만 한다면, 그 관계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온전히 서 있다가 서로의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기대고, 다시 홀로서야 온전한 사람인(人)의 모양이 완성된다.


내가 온전히 서야 한다.

그래야 함께 어울릴 수 있다. 내가 온전히 서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걷어내야 합니다. 두려움이란, 기대고 싶거나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 두려움이 홀로 서지 못하게 막아선다.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고,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다. 두려움은, 사람에게 기대서는 걷어낼 수 없다. 나의 두려움을 어디에 기대설지,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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