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되고 공감돼서 갖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려는 진실한 마음으로 갖게 되는 것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있다.
특정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말이다. 소위, 흥행 보증수표라고 한다. 스토리가 재미없더라도, 그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아쉬움을 털어낼 수 있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 잡은 배우는 극히 적다. 지금은 유명하지만, 무명 배우 시절부터 연기력을 쌓으며 차근차근 올라온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때를 기다린 거라 볼 수 있다. 보장되지 않은 오랜 기간,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분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그 집념과 인내가,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 잡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믿고 보는 선수’라는 말도 있다.
응원하는 팀의 특정 선수가 나오면, 기대되거나 편안하게 볼 수 있다. 야구에서는 공격할 때, 안타나 홈런을 쳐줄 것으로 기대한다. 득점권 찬스나 점수가 뒤지고 있을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 선수를 바라보게 된다. 수비할 때는, 그 선수에게 공이 날아가면 당연히 잡아줄 것으로 생각해서 편안하게 플레이를 지켜본다. 잡기 어려운 공이라도, 어떻게든 낚아챌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선수들 역시, 신인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도 있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경험과 훈련으로 믿음을 키워간다.
믿고 보는 배우든 믿고 보는 선수든, 믿음을 키우고 다지기 위한 노력을 생각해 본다.
믿음의 무게를 키우기 위해, 더 많이 그리고 길게 견뎠을 어둠의 시간과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어쩌면 짐작한다는 말이나 이해된다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감히 어떻게 그들이 견뎠을 어둠의 시간을,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을까?
“제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해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한 후배가 필자에게 했던 말이다. 자신도 힘든데, 더 많은 업무와 책임을 떠안고 있던 필자가 안쓰럽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후배는 자신의 위치에서, 이해한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고 말했다. 이해한다는 공감의 말보다, 공감하지 못하지만, 함께 느끼고 싶다는 말이 더 깊게 와 닿았다. 어설프고 말뿐인 공감보단, 공감하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이 사람의 마음을 더 안아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믿음은 이해하는 크기만큼 단단해진다고 생각했다.
이해돼야 공감할 수 있고, 그것이 곧 믿음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배의 말을 통해, 이해되거나 공감돼야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해하고 싶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처지에서 가당치 않지만, 그 어려움과 힘듦을 함께 느끼고 싶다는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자신은 부족해서,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믿음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닌지 살펴봐야겠다. 믿음은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