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고자 하는 욕심만 앞세우면, 손실로 변하게 되는 현실 』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란 말이 있다.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실을 보게 되는데, 이를 합치면 제로(zero)가 되는 게임을 말한다. ‘이득’과 ‘손실’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한쪽과 다른 한쪽을 이분법으로 가른다. 이때 누군가는 ‘100’이 되고 누군가는 ‘0’이 된다. 이 개념을 한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득을 볼 때가 있으면, 손실을 볼 때도 있다.
인생을 통틀어 생각하면, 이득과 손실의 합은 제로다. 이득을 봤다고 마냥 좋아할 필요가 없고, 손실을 봐도 마냥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 노심초사하면서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받았으면 곧 줄 것이고, 줬으면 곧 받을 테니 말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가 이 부분을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생각대로 그렇게 쉬운 부분이 아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잘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이득과 손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이득이 생기면 그 환경은 금방 익숙해지고, 고마운 마음은 쉽게 잊힌다. 반대로, 손실이 발생하면 이득이 생겼을 때보다 더 강력한 느낌을 받는다. 환경에 적응이 잘되지 않고, 불편과 불만이 크고 오래간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금니가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
너무 아파서 이와 이가 닿기만 해도 머리 전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씹을 수조차 없었다. 앞니로 음식을 삼킬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씹어서 삼켰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소화도 잘 안됐다. 잘 씹지 않고 넘겼으니 당연했다. 아픈 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치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어금니를 빼서 치료하자고 제안했다.
그냥 치료하면 통증이 심하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는 게 이유였다. 몇 년 전 사랑니 4개를 뺐던 기억이 떠올랐다. 4개 중 한 개가 잘 뽑히지 않았었다. 하도 안 빠져 몇 번을 쉬었다 다시 하고를 반복했다. 1시간가량 실랑이를 버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래서 잘 안 빠졌구나?” 선생님이 빠진 이를 한쪽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고개를 돌렸는데, 이런 이는 처음 봤다. 뿌리가 여러 개 있는데,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뿌리가 깊으니 잘 빠지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발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치과를 나왔다.
바로 전날 느꼈던 통증이었다면 바로 뽑자고 했을 텐데, 통증이 조금 줄어든 상태라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발치가 두렵기도 했고 연말이라 술자리도 많이 잡혀있어, 일단 시간을 끌기로 했다. 통증은 잡아야 해서 진통제를 먹었다. 효과가 있길래 아플 때 한 알씩 먹었다. 며칠을 먹었는데,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조금씩 통증에 대한 기억도 함께 사라졌다.
저녁 자리에서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한참을 즐겁게 식사하고 있는데, 고기 한쪽에 숨어 있던 작고 동그란 뼈가 씹혔다. 윗니와 아랫니가 동시에 잘 맞게 씹히지 않고, 비껴서 씹혔다. 발목을 겹질리는 듯한 느낌이 입안에서 벌어졌다. 비껴간 윗니가 아랫니 옆에 있는 혀끝을 눌렀다. ‘아! 아, 뭐야!’ 혀끝에서 통증이 느껴지면서 나쁜 기분도 함께 일었다. 좋았던 기분이 작은 뼈 하나에 완전히 틀어졌다. 기분 나쁜 느낌은 오래 지속됐다.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통증이 가라앉고 다시 고기를 집는데, 뼈를 씹었던 부분이, 며칠 전까지 통증으로 매우 괴로워했던 이었다는 걸 알았다. 제대로 씹을 수만 있어도 감사하겠다는 마음이, 며칠 새 그렇게 변해있었다.
힘들고 괴로운 지점이 있을 때, ‘이것만 없어지면….’하고 생각한다.
그것만 없어지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없어지면 그랬던 생각도 함께 사라진다. 이득과 손실을 느끼는 순간적인 무게감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정말 나에게 이득은 무엇이고 손실은 무엇인지. 손실을 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앞에서는 이득 보고 뒤에서 손해 보는 장사’라는 말처럼,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