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몇 년 전 그날 그때가 떠오르는 거죠. 심지어는 몇십 년 전 그날이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문득 떠오른 그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에 놀라기도 합니다.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한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간 상황 중 하나로 여겼는데 떠오르기도 합니다. 무슨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비뽑기에서 사진 하나를 뽑은 것처럼 그냥 툭 하고 눈앞에 드리워지는 겁니다.
장면이 떠오르면 그때의 상황을 따라갑니다.
소설로 치면 삼인칭 시점으로 따라가는 거죠. 기억했던 상황, 그러니까 예상하는 상황이 그려지면 별생각 없이 그냥 따라갑니다. 하지만 그때는 보지 못한 상황이 그려지면 살짝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아! 그랬던 거구나!’ 하는 거죠. 영화를 볼 때도 그렇지 않나요?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 전에 보지 못한 장면이 보입니다. 같은 장면이지만 느낌이 다를 때도 있습니다. 악인으로 보였던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당연하다 생각한 행동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상황을 판단할 때, 여러모로 살펴보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을 틀릴 수도 있고, 지금은 맞는데 그때는 틀렸을지도 모르니까요.
떠오른 장면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고마운 사람입니다. 학창 시절은 물론 사회 초년생 때 도움을 줬던 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주 어릴 적에 도움을 줬던 분들도 떠오릅니다. 이런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제대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전혀 연락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연락이 끊긴 지 한참 된 분도 있고요. 연락이 끊겼다는 건, 연락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먹고살기 바빴다는 건데요. 가장 대기 쉬운 변명이면서, 쉽게 수긍하는 변명입니다.
그분들은 아니었을까요?
먹고살기 바쁘지 않아서 도움을 주었던 걸까요? 아닐 겁니다. 먹고살기 바빴지만, 도움을 줬을 겁니다. 누군들 먹고사는데 바쁘지 않을까요? 혼자 살거나 결혼했거나 아이가 있거나 아이가 없거나, 먹고 사는 건 다 바쁩니다.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먹고 사는 데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살필 줄 아느냐 그렇지 않으냐로 갈릴 뿐이지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가슴 한쪽이 사늘해집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요.
이름보다, 사람을 남기는 듯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러더군요. 자기가 죽을 때 진심으로 슬프게 울어주는 사람이 다섯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일 거라고요. 처음에 들었을 때는, ‘다섯 명이면 적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내느냐에 따라서 말이죠. 어떤 삶을 살아내느냐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사랑을 실천했느냐에 따라서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진정으로 슬퍼해 주는 사람은, 진정으로 사랑받은 사람일 테니까요.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습니다.
언론에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도 있고, 주변 사람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내고 떠났는지가 조금은 느껴집니다. ‘아! 저분처럼 살아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들면서, 다짐하게 하는 분도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의 조화가 깔리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내가 죽었을 때, 이런 분위기였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거죠. 와야 해서 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사랑을 나눈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보다, 나눈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말이지요.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준 사랑보다 받은 사랑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지 못한 분들께 드릴 수 있는 인사가, 이것이 아닐지 싶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이 많아 나눠드리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 말이죠. 되돌려 받을 사람이 아니라, 진정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내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