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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Sep 12. 2020

저비용항공사(LCC)의 편견

# 종잇장 비행기

  마포구 망원시장 입구에는 꿔바로우를 컵에 담아 파는 가게가 있다. 어릴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팔던 컵볶이 마냥 갓 튀긴 꿔바로우를 종이컵에 담아 소스를 끼얹고 내어준다. 바삭하고 고소한 꿔바로우의 매력적인 맛에 가격도 저렴해 시장에 들를 때마다 사 먹었다. 얼마 전 망원시장에 다녀왔는데 가게가 없어졌다. 아쉽다.

 가게가 없어지기 전 망원시장에 들렀을 때다. 그날도 꿔바로우를 사려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는 대학생 남짓한 두 젊은 친구가 서 있었다. 둘은 여행 얘기를 하다가 본인들이 탔던 항공사 얘기를 시작하더니 우리 회사 이름을 꺼냈다. 욕을 하더니 급기야 한 명은 “저가항공사는 도저히 불안해서 못 타겠어. A 항공사 비행기는 정말 종잇장 같아!”라고 말했다. 지금은 아내인 당시 여자 친구였던 Y는 옆에서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그 둘은 주문한 꿔바로우를 받고 시장 안으로 사라졌다.


# 항공사의 전략 2가지 : FSC와 LCC

 저비용항공사(LCC; Low Cost Carrier)는 승객 서비스와 운영 비용을 줄여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판매하는 항공사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에어 서울 등의 항공사가 있다. 항공종사자들은 주로 LCC라는 용어를 사용하니 이제부터는 LCC로 통칭하겠다. 반대 개념으로는 FSC(Full Service Carrier)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회사가 있다. 서비스가 좋은 대신 항공권이 비싸다. 더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만 국적 항공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의 항공사는 전부 국적 항공기다.


 LCC라고 해서 비행기 정비나 안전에 관한 사항까지 저렴하게 관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들부터 그 비행기에 타지 않을 것이다. 단지 서비스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승객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LCC 비행기는 FSC 비행기보다 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조종사가 되기 전 항공산업에 관해 무지했을 땐 그런 편견이 있었다. 그래서 불만이 많은 승객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단지 몇몇 사람에게 서운할 뿐이다. 내가 LCC 조종사라는 걸 알면서 굳이 내 앞에서 ‘저가항공사는 불안하지 않아?’라고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밉다.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는 발끈해서 팩트를 얘기해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사람들은 실제 팩트보다는 자기 생각을 더 옳다고 여긴다는 것만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그 사람들 비위에 맞춘다. ‘응 맞아. 위험해. 위험해서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비행하지’라고 겁준다. 내 얘기를 들은 사람은 영화 <조조 래빗>의 유대인 소녀가 독일 남자아이를 놀릴 때 그 남자아이의 겁먹은 표정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또 다른 승객들의 불만이 있다. FSC와 LCC 항공권 가격 차이가 얼마 안 난다고 하는 것이다. LCC 비행기 탈 바에야 몇만 원 더해서 FSC 타겠다는 글도 보았다. LCC의 딜레마다. 십수 년 전, 한국에 항공사라고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밖에 없었을 때 항공권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비쌌다. 이코노미 좌석으로 방콕 왕복 항공권이 80만 원 정도였다. 지금 LCC는 절반 가격으로 다녀올 수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LCC가 늘어나면서 FSC는 이전에 선점했던 항공여객 시장을 뺏길 위험에 마진을 크게 줄이면서 항공권 가격을 낮췄다. LCC가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운임료가 싸졌는데 승객들은 FSC와 LCC가격 차이가 얼마 안 난다고 LCC를 욕한다. 나도 승객 입장이라면 이런 불만이 생길 것 같긴 하다. 억울하지만 LCC 항공사들이 해결해야 할 딜레마다.  (그래도 대부분 승객은 몇 만 원 더 싸면 FSC를 안 타고 LCC를 탄다고 한다.)


# LCC 편견 1 - 흔들리는 비행기

                                                                                ‘저가 항공사는 불안하다.’, ‘비행기가 안전하지 못하다.’


 자주 듣는 불평이다. 참고로 정확한 표현은 저가 항공사가 아니라 저비용 항공사다. 큰 차이는 없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어감이 미묘하게 다르다.

 LCC 비행기를 불안하다고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비행 중 난기류를 만났을 때 비행기가 크게 흔들린 경험 때문이다. 비행기가 많이 흔들리고 적게 흔들리는 것은 항공사의 차이가 아니라 비행기 크기의 차이다. 대부분 승객은 LCC를 통해 작은 비행기를 타고, FSC를 통해 큰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이런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작은 비행기를 탔을 때 난기류를 만나면 저비용 항공사의 같은 비행기를 탔을 때와 똑같이 흔들린다.

 비행 중 난기류를 만나면 당연히 어느 비행기나 흔들린다. 단지 큰 비행기는 같은 난기류에도 덜 흔들리고, 작은 비행기는 많이 흔들릴 뿐이다. 자동차로 보자면 대형차와 경차의 차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한강 대교를 경차로 빠르게 주행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마 무시하게 흔들린다. 반대로 대형차를 타면 덜 흔들린다. 절대 경차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다.

 항공 여행객 대부분은 LCC와 FSC 비행기를 혼용해서 여행한다. 제주도나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단거리 여행을 위해서는 LCC를 이용한다. 반면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 같은 먼 곳을 여행할 땐 FSC의 큰 비행기를 탑승한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장거리를 운항하는 LCC가 없기 때문이다. 두 FSC (대한항공, 아시아나)에도 작은 비행기가 있어 단거리를 운항하지만, 대부분 승객은 가격을 고려해 가까운 곳은 LCC를 더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가까운 곳 = LCC 비행기’라는 인식이 생겼다. 대한항공을 이용해도 같은 체급의 비행기를 타면 난기류에서 LCC 비행기와 똑같이 흔들린다. 같은 크기의 비행기이기 때문에. 단지 그 경험을 많이 안 해봤을 뿐이다.

 비행기가 종잇장 같다는 말은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종잇장 같은 비행기에 탑승해도 ‘혹시 추락하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난기류는 불쾌할 뿐 추락할 일은 거의 없다.


# LCC 편견 2 - 조종사의 실력

 LCC 조종사들은 착륙을 못 한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실제로 조종사의 기량이 부족해서 활주로에 쾅 찧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조종사의 실력이라기 보단 항공기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수익 극대화를 추구한 비행기 제작사 ‘보잉’ 사의 의도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상당수 LCC들은 수익 추구를 위해 보잉의 B737-800(이하 B737) 기체를 사용하고 있다. B737을 많이 이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싸고, 튼튼하다. 원래 이 비행기 동체 길이는 지금보다 짧았다. 이 기체는 수십 년 전 보잉사에서 미국 국내선 전용으로 만든 비행기다. 이 비행기가 잘 팔리는 데다 항공운송 이용객이 해가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다 보니 국내선을 넘어 국제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보잉은 B737 동체 길이를 점점 더 늘렸다. B737은 길이와 성능에 따라 B737-100부터  B737-900까지 있고, 현재 전 세계 B737은 대부분 B737-800이다. 우리나라에선 대한항공,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플라이 강원이 이 비행기를 사용하고 있다.(대한항공은 B737-900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행역학 구조상 짧았어야 할 비행기가 더 많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 길어지다 보니 안전을 위해 착륙 시 더 빠른 속도로 착륙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빠른 속도로 착륙하면 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운전할 때 빠른 속도에서 방지턱을 넘을 때 느린 속도에서 넘을 때보다 충격이 더 큰 것과 같은 이치다.(작용 반작용 법칙, 뉴턴의 3번째 법칙) 충격이 더 크다고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승객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 승객은 B737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조종사의 기량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제주공항 날씨는 최악이다. 일본 항공사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제주공항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제주공항에는 돌풍이 자주 분다. 비행기는 바람에 민감해 돌풍이 불면 충격이 큰 착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활주로에서 감속을 빨리할 수 있다. 부드럽게 착륙하면 그만큼 속력이 제 때 줄지 않아 활주로를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B737 특성과 제주도의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B737 조종사들은 활주로에 큰 충격을 주고 착륙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 관광객 대부분은 비싼 FSC보단 상대적으로 저렴한 LCC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더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변명 겸 하소연해봤다. 써봤자 안 바뀔 거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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