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대로 살면 정말 자유로울까?

욕망을 멈출 수 있는 힘에 대하여

by 해루아 healua


우리는 더 빨라졌지만,
더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깊어지는 대신
다른 것을 더 갈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자유다.



이 시대에 ‘자유’라는 단어를 던지면, 열에 아홉은 망설임 없이 ‘경제적 자유’를 말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주식으로 벼락부자가 되고, 자고 일어나니 자산이 몇 배로 불어났다는 성공 신화가 파도처럼 밀려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SNS 속 타인은 언제나 여유롭고 완벽해 보이는데, 나만 유독 아등바등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기분.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슬픈 ‘기본값’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질문이 들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그 자유는,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있을까?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5분마다 주식 창을 확인하고,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정보에 매달리며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마음을 졸이는 삶.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라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자유라기보다 환경이 만들어 놓은 흐름에 떠밀려 사는 삶에 가까웠다.



인생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상하게도 힘든 일들은 꼭 한꺼번에 몰려온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은 꽤 길고 버거운 시간이었다. 사람 사이에서 상처를 주고받던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어떤 일들은 애쓴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바꾸려 애쓸수록 내 힘만 빠질 뿐, 세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버티고 흘려보내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있다는 것도.


모든 것이 100% 내 탓도 아니고,
100% 세상 탓도 아니다.

내 책임이 절반이라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영역도
절반은 존재한다.

_책 <남이 만든 그릇에 내 인생을 담지 마라>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는 믿음을 내려놓고,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나는 조금 편해졌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리한 낙관도, 회피도 아닐 것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과 의연함의 태도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사고 싶을 때 사는 삶은 겉보기에는 자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욕망의 파도를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마음은 오히려 공허해진다. 진짜 자유는 어쩌면 그 반대편에 있었다. 먹고 싶을 때 멈추고, 사고 싶을 때 돌아설 수 있는 힘. 나를 내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통제력 말이다.



그 실마리를 나는 빅터 프랭클에게서 찾았다. 나치 수용소라는 극단의 결핍 속에서도 그는 ‘마음가짐을 선택할 자유’만큼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은 너무 풍족해서 이 자유를 잊고 산다. 모든 것이 주어지니 선택할 필요가 없고, 선택이 사라지니 사유도 멈춘다.



챗GPT가 답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결정하는 시대일수록, 나는 더 뾰족하게 질문하고 치열하게 읽고 써야 한다고 믿는다. 편리한 도구에 생각을 맡기는 순간, 우리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감옥 속에서 순종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작은 결핍을 남겨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조금 느리게 사는 선택.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조금 덜 가지는 선택.


어쩌면 그 작은 선택들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유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이전 10화기다리지 못하는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