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는 얻지 못해 괴롭고,
막상 손에 넣으면 그때부터는
허무와 권태가 밀려온다.
인간의 욕망이란
애초에 채워질 수 없는,
밑 빠진 독과 같은 것이었다.
결핍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 다닐 뿐이다.
돈이 없을 때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돈이 생기면 이내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사회적 인정을 갈구하다 마침내 그것을 얻어내면, 이번에는 타인의 시선과 비교라는 감옥에 갇혀 진짜 자유를 잃어버린다.
가난할 때는 돈이 없어 괴롭고, 돈을 벌 때는 그 욕심을 채우느라 시간이 없어 괴로우며, 시간마저 생기고 나면 비로소 마주하게 된 허한 마음 때문에 괴롭다. 그저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 다닐 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평생 부족하지 않기 위해,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애써 살아왔는데 왜 이제야 비로소 ‘일부러 작은 결핍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다. 넘쳐나는 정보는 우리를 멈추지 못하게 만들고, 멈추지 못하는 삶은 돌아볼 여유를 앗아간다. AI 시대가 도래했다는 소식은 우리의 불안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
머지않아 나의 자리를 대신할 존재가 나타날 것 같고, 이대로 멍하니 있으면 뒤처질 것만 같은 공포가 우리를 끊임없이 어딘가로 떠민다.
5분마다 확인하는 붉은색 주식 차트와
24시간 멈추지 않는 코인 시장으로,
휴식마저 생산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이 만든 무수한 N잡의 굴레로.
뚜렷한 목표는 없지만 남보다 더 벌어야 할 것 같고, SNS 속 타인보다 더 잘 살아 보여야 할 것 같고, 어떻게든 더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서글픈 질주.
하지만 지금 우리를 진짜 지치게 하는 것은 ‘부족함’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이 쉼 없이 떠먹여 주는 타인의 삶과 나를 끊임없이 대조하게 만드는 ‘비교의 과잉’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의 결핍이 무엇인지 자주 생각해 본다. 결핍은 늘 내 밖에 있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자리 안에 있었다.
나의 결핍은 '경력 단절'이었다. 멈춰버린 시간, 멈춰 있는 직급, 어디에도 이어지지 못한 것 같은 이력. 세상은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는데 나만 같은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 그 감각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결핍은 사실 그 자체보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에서 더 커진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나를 ‘멈춰버린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내 결핍의 단어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기로 했다.
경력 단절이 아니라, 경력 재구성.
멈춘 시간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는 시간.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중이라고. 상황을 당장 바꿀 수는 없어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52일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 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의 이력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조직이 부여한 경력은 멈췄을지 몰라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경력은 매일 한 줄씩 쌓이고 있었다.
결핍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결핍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다시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어쩌면 우리는 결핍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그 결핍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결핍의 이름을 ‘재구성’이라 바꿔 부르자, 비로소 내가 다시 설계해야 할 삶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