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로 한 몸의 기록
나는 요즘 일부러 느리게 살려고 애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느려지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속도를 올릴수록 잘 살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8시, 블로그 글을 발행하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벌써 500일 가까이 이어온 이 약속 때문인지, 이제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깨어나 노트북 앞에 앉는다.
하지만 매일 쓰는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에 올릴 글을 준비하는 시간은 유독 길고 무겁다. 조금 더 깊게 쓰고 싶고, 나다운 문장으로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발행 버튼 위에서 자꾸만 나를 붙잡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면 내가 살아 있다는 강렬한 전율이 찾아온다. 극강의 몰입이 주는 쾌감. 하지만 그 짜릿한 몰입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정신은 저 높이 날아오르는데, 내 어깨와 손목, 손가락은 땅바닥에 박힌 채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 풀리는 건,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난 뒤 찾아오는 짧은 정적 덕분이다. 화면을 닫고 나면 비로소 창밖의 빛이 보이고, 집안의 공기가 느껴진다. 그제야 나는 작가에서 아내의 자리로 돌아온다.
오전 7시,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리며 일상의 리듬을 맞추는 것.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다시 말랑하게 만드는 이 시간은 이제 내게 가장 소중한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평온을 누렸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모른 척하며 살았다. 일단 글을 먼저 발행해야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20대에게 운동이란 그저 '보이는 몸'을 위한 다이어트였다. 하지만 30대의 운동은 생존을 위한 '버티는 힘'이다.
다정함조차 결국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과거 출퇴근 거리가 멀었던 직장에서 절감했듯, 나를 돌보는 모든 행위에는 마음보다 먼저 '에너지'가 필요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섰던 칸트나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하루키의 루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쓰는 사람의 하루가 유난히 단순하고 지루한 이유는, 글쓰기라는 고된 노동을 견뎌낼 최소한의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장은 머리가 아니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정직한 체력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처럼 '쓰는 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 내 삶의 온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 찾아왔다. 바로 1년 전 시작한 시험관 아기 준비였다.
간절히 기다리는 아기 천사를 위해, 나는 내 몸을 가장 따뜻하고 정갈한 상태로 다시 빚어내야만 했다. 건강 서적을 탐독하고 난임 자료를 모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던 내 몸은 사실 오래전부터 간절히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차가운 각성제 대신 따뜻한 온기로 스스로를 보살펴야 할 때라고 말이다.
한때 나는 지독한 ‘얼죽아’였다. 차가운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때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위장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나는 커피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가끔 친구와의 약속에서만 아주 특별하고 맛있는 커피를 한 잔 즐기는 것, 그 정도의 일탈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나의 이런 변화는 곁을 지키는 남편의 습관과 만나면서 비로소 단단한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흔히 부부는 닮아간다고 했던가. 남편은 평소 희석된 얼음 맛이 싫다며 한여름에도 늘 따뜻한 커피만 고집하던 사람이었다.
어느 주말 아침, 카페 카운터 앞에서 내가 먼저 주문을 던졌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남편이 의외라는 듯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어? 이제 자기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마셔?"
"응. 마셔보니까 이게 더 향긋하더라. 크레마 올라오는 것도 보기 좋고. 요즘은 디카페인으로 마시려고 해. 몸이 예전 같지가 않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아침은 차가운 각성에서 따뜻한 온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느리게 살기 위해, 나는 매일 일부러 불편해지기로 했다. 그 선택이, 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아침 의식의 시작이었다.
(14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