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金屬 metal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마징가 Z
마징가 Z, 국내에서는 1975년에 첫 방영을 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주제가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서, 당시 초등학생들은 입에 달고 다녔고, 운동회 때면 응원가로도 애창되었다. 노래의 가사에는 마징가 Z의 재료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무쇠팔 무쇠다리’, ‘무쇠로 만든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주제가 덕분에 필자는 ‘무쇠’가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라는 생각을 어린 마음 속에 갖고 있었다.
무쇠 / 주철
무쇠는 탄소함량이 2%이상인 철을 지칭하는 ‘주철’의 순 우리말이다. 주철은 탄소함유가 높아서 단단하지만, 연성이 약해 충격에 쉽게 깨진다. 게다가 주철은 녹인 쇳물을 형틀에 부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주물’ 방식에 적합한 금속이다. 즉 주물로 만든 제품은 두껍고 무겁다. 로보트 제작에는 최악의 재료인 것이다. 일정한 형태를 반복해서 생산하는 소형의 피규어 로봇이면 적당하겠다.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공학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애니메이션 내용에는 후지산에서만 발견되는 미지의 신원소 ‘재패니움(국내에서는 ‘코레이늄’으로 번역)’이라는 특수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에니메이션 내용과 주제가 내용이 다른 것이다. 너무 좋아했던 노래여서 였을까? ‘무쇠’의 참뜻을 알고 나니 문학적 표현으로 넘기기 어려운 배신감이 들었다. 어린시절 마징가 Z 주제가에서 느낀 이 불편한 기분을 건축설계를 하면서 다시 느끼게 해준 금속이 있었으니 바로 ‘리얼징크’였다.
징크(Zinc) ; 아연
징크(Zinc)가 무엇인가? 징크(Zinc)는 아연을 말하는데, 원소기호 Zn, 원자번호 30인 금속으로 철, 알루미늄, 구리와 함께 매우 중요하고 널리 사용되는 금속이다. 아연은 공기 중에서 단단하고 얇은 산화피막(ZnO)을 형성하여 더 이상 산화하지 않는다. 즉 녹이 생기지 않는 금속이다. 건축 재료로서 아연(zinc)은 로마시대부터 지붕재료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1811년 이후 얇고 넓은 판 형태 (rolled zinc)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1852년 프랑스 파리에서 모든 지붕을 아연(zinc)으로 하도록 규제하면서 오늘날 파리의 건물 90%이상이 아연판 지붕인 풍경이 되었다. 1960년에는 소량의 티타늄을 아연에 합금하는 기술이 완성되었고, 1976년에는 생산공정에서 인공적으로 산화층을 형성(pre-weathering)하는 제품이 출시되면서 오늘날의 아연(zinc) 지붕재가 보급되었다. 건축 재료로서 징크라면 이런 제품을 사용할 때 징크를 사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석
장점만 있어 보이는 징크도 단점이 있다. 철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저렴한 철을 바탕 재료로 하고, 가격이 비싼 아연을 얇게 도금하여 철이 산화(녹) 되는 것을 방지하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철판에 아연도금을 한 것을 우리는 ‘함석’이라고 한다. 함석은 녹이 생기지 않지만, 필요한 모양으로 절단하면 문제가 생긴다. 절단면에 철이 노출되면서 이 부분부터 녹이 생기는 단점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과 산화(녹)에 어느정도 저항성이 있는 함석이 널리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리얼징크는 범죄에 가까운 용어
그런데 ‘리얼징크’는 전혀 다른 제품이다. 철판 위에 페인트를 칠한 제품인 ‘칼라강판’ 중에서 아연판의 산화층 표면 색상을 흉내 내어 아연판 처럼 보이는 제품이다. 모조품에 ‘리얼징크’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색상과 무늬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칼라 강판은 강판의 장점과 함께 다양한 무늬와 색상을 적용하여 폭넓은 소비자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도장 기술이 발전해서 그 표현력도 정교해졌고 내구성도 훌륭하다. 적절히 사용된다면 칼라강판도 분명 요긴한 건축 재료인 것이다.
‘리얼징크’라는 단어를 순수한 아연판을 지칭하거나 티타늄 등을 소량 첨가하여 아연의 성능을 개선한 아연판을 지칭하는데 사용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연도금한 철판을 지칭히는데 사용했다면 이견이 있을 수 있겠다. 금박한 것을 순금 또는 진짜 금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첨단 로봇 소재를 ‘무쇠’라고 작사한 것은 어린 나를 기망한 것이고, 아연(zinc)이 아닌데 ‘리얼징크’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파리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것은 무지한 소비자와 동종 업계의 전문가를 기망한 것이다. 전자는 웃어 넘길 수 있지만, 후자는 범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게맛살’을 ‘게살’이라고 하면 소비자를 속인 것이 되므로, 형사상 책임이 지워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징크 색깔의 칼라강판’을 ‘진짜징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게맛살’을 ‘진짜게살’이라고 이름 붙여 판매하는 것과 같다. ‘리얼징크’라는 제품명이나 용어는 윤리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바
‘리얼징크’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건축 현장이나 계획 과정에서 사용하는 말을 듣고 불편했던 용어는 ‘갈바’였다. 너무나 자주 사용하고 너무나 편하게 써서 ‘갈바’라고 표기된 도면도 많다. 그래서 ‘갈바’가 어떤 용어인지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계기는 중국 현장으로 보내야하는 도면을 작성하면서 였다. 표기를 영어 또는 한자로 표기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갈바’를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몰랐다. 적절한 표기법을 주변에 문의했으나 답변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난감한 상황에 해결의 실마리는 현장에서 있었다. “예전에는 ‘갈바’를 ‘함석’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현장 경험이 많으신 잡철 사장님이 귀뜸해 주셨다. ‘함석’을 검색하니 ‘표면에 아연을 도금한 얇은 철판’ 이라는 해설이 있었고, 영어사전에는 ‘galvanized steel sheet’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galvanize는 ‘~에 아연 도금을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이고, 함석의 영어표현인 galvanized steel sheet를 줄여서 ‘갈바’로 불렀던 것이다.
구로철판
구로철판은 차분한 색상에 표면 무늬가 자연스러워 인테리어 소재로 널리 사용되는 철판이다. ‘갈바’처럼 ‘구로’라고 통용된다. ‘구로철판’이 무엇인지 재료를 보면 분별할 수 있더라도, ‘구로’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로’는 일본어로 검은색(くろ[黒])을 뜻한다. 쇳물을 가공해서 나온 평평한 모양의 철강반제품인 슬래브를 뜨거운 상태에서 롤러로 압축해 필요한 두깨의 철판으로 가공한 것을 열연강판이라고 하는데, 이때 가열과정에서 표면이 산화되어 열연강판이 검은 색을 띄게 된다. 그래서 검은색철판이란 의미로 일본어로 ‘구로철판’ 또는 ‘구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써스
스테인리스강(stainless steel)을 ‘써스’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느낀 난감함은 아직도 기억난다. 영어인 stainless steel을 줄여도 ‘써스’가 조합되지 않았고, 비슷한 발음의 일본어도 없었다. ‘써스’의 의미는 점심식사로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단서를 찾았다. 밥그릇의 뚜껑을 열었는데, 뚜껑에 SUS-304 라고 음각이 되어 있었다. 고맙게도 밥그릇을 만든 금속 재료의 기호를 친절하게도 새겨둔 것이다. SUS는 JIS(일본공업규격)에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강 표기다. Steel Use Stainless의 약자로 SUS라고 표기한다. 아마도 국산 스테인리스강이 보급되기 전 일본산 스테인리스강을 많이 사용하면서 재료표기에 사용된 약자(SUS)를 그대로 읽어 ‘써스’라고 부른 것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Stainless Steel의 약자로 SST.를 사용한다. 그래서 건축사사무소마다 또는 도면작성자 마다 스테인리스강을 표기하는 약자가 다양하다. 신입사원들이 현장에 몇 번 다녀오면 입에서는 ‘써스’가 튀어 나오고 도면에는 해외서적에 표기된 SST가 표기되는 모습을 보았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편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전문용어는 그렇게 누더기가 되었다. KS 기준에서는 스테인리스강을 STS.라고 정하고 있으니, 우리 도면에는 STS라고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표기가 적절하다면, KS 기준을 바꾼 뒤에 사용하는 것이 순서겠다.
금속의 나라, 한국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은 오직 14개뿐이라고 한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것이 10개다. 단연 압도적인 비율이다. 금속활자 인쇄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이나 철로 배를 덮은 거북선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 숟가락과 젓가락을 고대부터 지금까지 금속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유일무이하다. 현재에 이르러 우리의 선박과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금속을 다루는데 남다른 우수성이 있음을 숨길 수가 없겠다. 그래서 금속관련 용어의 의미나 어원을 모르고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