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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ae Shin Dec 14. 2022

용어@건축 04

유리    glass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신라의 유리병

경주 고분 중에 가장 큰 황남대총에서는 남분과 북분을 합쳐 6만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6만여 점 유물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갖겠지만,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유리병이다. 유리는 4000여 년 전쯤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에서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식사를 준비하던 중 소다 덩어리가 녹아 모래와 섞이면서 유리가 생성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그의 저서 [박물지]에 적고 있다. 지중해와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유리는 매우 귀해 보물처럼 사용되었는데, 7,000킬로미터 떨어진 아시아의 동쪽 끝 신라의 무덤에서 유리잔이 나온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백제의 고분에서도 유리잔이 발견되었으니 당시 동북아시아의 삼국은 로마나 서아시아와 활발한 교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는 유리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황남대총 출토 봉수형 유리병ⓒ 국립경주박물관

    

지중해 연안의 유리창과 동아시아의 종이창

황남대총의 유리병이 만들어진 지중해 연안에서는 유리로 병이나 잔을 만들면서 창유리도 만들기 시작했다. 로마시대 도시 유적에 발견된 창유리의 크기는 A4 종이 한 장 정도 크기였다. 로마시대 건물을 복원하면서 로마시대 창유리 제작 방법을 연구하고 재현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을 적신 평평한 돌 위에 액체 상태의 유리를 붓는다. 빈대떡처럼 펼쳐진 액체상태의 유리가 굳기 시작하면 쇠 집게로 잡아당겨 적당히 네모난 모양으로 만든다. 크기와 모양, 두께도 가지가지였고, 평활도와 투명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유럽과 서아시아의 건물들은 낮에도 실내가 어두웠다. 여기에 한 줄기 빛이라도 들일 수 있는 창이었고, 유리는 매우 고가였으니 손바닥 만해도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유리는 로만글라스(roman-glass)라고 하는데, 로마 유적지에서 다수 출토되고 있다. 한편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없는 종이로 창을 만들어 채광을 했다. 나무로 창살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를 붙였다. 가볍고 평평하며 크고 넓은 창이다. 수백 년 전까지 동양에서 만든 종이창의 채광 성능이 유리창보다 좋았고, 더 밝은 실내 환경을 만들어 줬다.

      

roman glassⓒ Amgueddfa Cymru (웨일스 국립 박물관)
crown / cylinder / cast / plate glass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다 크고 평활도가 향상된 창유리가 제작방법이 등장한다. 중세에는 우산 돌리듯 굳지 않은 유리를 돌려 원형의 유리판을 만들고 끝을 잘라내어 사각형의 평평한 유리를 만들었다. crown glass라고 하는 이 창유리는 중앙에 황소의 눈과 같은 문양이 남게 되는데, 이런 특징으로 황소 눈 유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유럽의 옛 건물에서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베니스 두칼레궁crown glass
crown glass ⓒ villumwindowcollection.com

또 다른 방법으로는 유리를 불고 흔들어 크게 늘리면서 관(실린더) 형태로 가공하는 cylinder glass가 있다. 가공된 대형 유리관(실린더)의 한쪽을 자르고 펼쳐서 사각형의 평평한 유리판을 만든다.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던 효과적인 방법이다.

cylinder glass ⓒ thecraftsmanblog.com
수작업 창유리 제작 과정

르네상스 시대에는 책상 같은 크고 넓은 틀(cast)에 유리를 부어 일정한 크기의 얇고 평평한 유리를 만든 뒤 다수의 노동력으로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냈다. cast glass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유리는 점점 커졌고 실내는 그만큼 밝아졌다. 산업혁명은 모든 것을 대량으로 생산해 냈다. 유리도 그랬다. 완전히 굳지 않은 유리를 두 개의 롤러 사이를 통화시켜 뽑아내는 rolled glass 생산기술이 19세기에 완성된다. 이런 방법으로 유리가 가래떡처럼 계속 나오니, 이제는 건물 전체를 유리로 마감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cast glass나 rolled glass 외에도 여러 회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용 유리를 대량 생산했다. 이런 건축용 판유리가 보편화되면서 모두 plate glass라고 통칭하게 된다. plate glass의 등장으로 20세기 건축은 큰 변화를 갖게 된다. 1921년과 1922년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보여준 두 개의 유리 마천루 계획안은 건물 전체가 유리로 씌워진 고층 빌딩이었다. 이후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29년 barcelona panilion, 1951년 farnsworth house와 lake shore drive apartmetns, 1956년 crown hall에서 판유리(plate glass)의 현대적 사용 방법을 보여줬고, 유리는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재료가 된다.

대량생산 창유리 제작 과정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리 마천루 스케치ⓒ Markus Hawlik (Bauhaus-Archiv Berlin)


창유리의 혁명 float glass

그렇지만, 판유리(plate glass)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평활도다. 1958년 이전까지 plate glass는 약간은 울퉁불퉁했고, 유리를 통해 바라보면 형상이나 비친 모습이 울렁거렸다. 투명했지만, 시각적으로 불편했다. 이 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한 것은 영국의 필킹턴(pilkington) 형제였다. 집안의 유리공장을 이어받은 필킹턴 형제는 1953년~1957년 사이에 용융된 주석 위에 녹은 유리를 띄워 평활도가 높고, 두께가 일정한 float glass를 개발한다. 액체상태의 주석과 액체상태의 유리는 비중이 달라 섞이지 않는다. 온도가 내려가면 유리가 먼저 굳기 시작한다. 따뜻한 우유가 식으면 표면에 지방이 먼저 얇게 굳는 것과 같은 원리다. 주석 위에 뜬 유리판은 표면이 매끄럽고 평활도가 높으며 두께도 일정했다. 순수하고 완전한 평평한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유리는 기존에 판유리(plate glass)라고 불려 왔던 유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이었기 때문에 판유리(plate glass)와 구분하여 float glass라고 한다. float glass는 최초로 건물에 사용된 곳은 어디일까? 뉴욕의 seagram 빌딩은 1958년 완성되었는데, 설계와 공사를 했던 기간이 필킹턴 형제가 float glass를 개발한 시기와 겹친다. 미스도 필킹턴 형제도 서로 필요한 관계였다고 추측해보면서 최초의 float glass가 적용된 건물은 seagram 빌딩이 아녔을까? 생각해본다. 우연이라도 연도가 딱 맞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seagram building(1958)
float glass 제작 과정
평활도가 좋은 float glass


우리나라의 판유리

43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float glass가 생산되지 않았다. 성북동에 있는 최순우 가옥의 창유리를 보면, 투명하지만, 울렁거린다. float glass가 아니라 plate glass다. 한글라스의 전신인 한국유리공업가 1977년 필킹톤 사의 float 공법을 도입하고, 1978년 float glass 공장이 준공된다. 그런데 우리는 float glass를 판유리(plate glass)와 구분하지 않고 통칭해서 판유리라고 불렀다. 결국 지금도 float glass를 지칭하는 우리 용어가 없다. 일반인은 float glass를 판유리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건축 전문가들은 영문표현이 아니면, 두 종류의 유리를 구분할 우리 용어가 없는 것이다. 세분화된 전문용어가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근대건축물은 복원 과정에서 본래 사용되었던 울렁거리는 plate glass를 제거하면 매끈한 float glass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 구분하는 용어가 없으면 구분하지 못하고 적절한 재료를 적절한 용처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북동 최순우 가옥의 판유리(plate glass)
'김중업'의 3.1빌딩(1970)은 국산 float glass가 생산(1978)되기 전에 지어졌다.
A종 B종 복층유리     

복층유리는 두 장 이상의 유리 사이에 공기층을 두고 복합하여 만든 창유리다. 단열성능이 좋아 복층유리가 보편화되면서 KS기호로 복합 구성을 구분하였다. 이 기호만 확인하면 어떤 구성의 복층유리인지 알 수 있다. 2012년 이전에는 1종, 2종, 3종으로 구분했다. 2012년 이후에는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1종과 2종을 A종으로 통합하고, low-e 코팅된 3-1종과 3-2종을 묶어 B종으로 통합했다. 그런데, 복층유리는 2중 유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3중 유리도 있다. 이제 3중 복합 유리도 보편화되었지만, 아직 2중과 3중을 구분하는 KS 기호가 없다. low-e 코팅을 안 했으면 A종이고, low-e 코팅을 했으면 B종이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가까이에 있는 창유리에서 복층유리 기호를 찾아보자. 로이코팅 유무는 A종 또는 B종의 표기로 확인할 수 있지만, 2중 유리인지 3중 유리인지는 경험으로 추측해볼 따름이다. 객관적 기호가 없는 것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적절한 재료를 적용하는 것만큼 적용된 재료의 종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용어와 기호가 필요하다.      

복층유리 기호 분류


우리는 plate glass와 float glass를 구분하지 않고 판유리라고 통칭하고 있고, 로이코팅 유무만 구분하여 A종, B종으로 표기할 뿐 3중 유리를 구분하여 표기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번 통용된 용어를 적절하게 바로 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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