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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May 13. 2020

책리뷰 3, 미술관에 간 의학자

- 명화를 해석하는 의학적 관점

책리뷰 3, 미술관에 간 의학자/ 박광혁 지음

진료실에서 보내는 시간 다음으로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괴짜 의사 박광혁이 쓴 ‘미술관에 간 의학자’. 그는 휴가 때면 어김없이 해외 미술관을 찾는다는 진짜 미술 애호가이다. 의사의 시각으로 본 미술책은 어떤 시각으로 그림을 해석할까 많이 궁금했다. 역시 우리가 보는 시각과는 다르게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동시에 디테일한 것들에 주목하면서 의학적 해석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고교 후배이기도 한 그의 색다른 시각에 많은 것을 느끼며 읽게 되었다.

“아주 상반된 분야처럼 느껴지는 의학과 미술은 ‘인간’이라는 커다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P5)


“의사인 제게 있어 그림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즉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기록'입니다.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보면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이 열립니다.” (p6)




이 책은 미술관 시리즈 중 세 번째의 책으로 현직 의사가 집필하여, 의학의 관점에서 바라 본 세계적인 명화들을 분석하였기에 매 그림마다 흥미진진하다. 그림마다 숨겨진 의학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점이 흥미로웠고, 우리들은 놓치는 세부 장면들도 의학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 책은 크게 네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세상을 바꾼 질병

2장 화가의 붓이 된 질병

3장 캔버스에서 찾은 처방전

4장 의학에 풍성한 이야기의 결을 만든 신화와 종교


그 안의 34개의 주제 속에서 87명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의학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이야기마다 명화에서 찾아보는 가지각색의 질병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 내가 꼽은 인상 깊은 대목들만 추려 본다.


1. 현대 의학 발전에 공헌한 시신들


책의 시작은 카데바(의학 교육 목적의 해부용 시신)였다. 왜 하필 시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지 의아심이 들기도 하였으나, 인생은 누구나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어야하니 거기서 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겠다고 저자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의대생들의 필수 통과의례인 카데바 실습실에서는 아직도 기절하거나 아니면 포르말린 냄새로 눈물, 콕물 범벅이 된다고 한다. 17세기 전까지는 닥터라고 하면 내과의사를 가리켰고, 외과의사는 이발사를 겸할 정도로 신분이 낮았다. 외과의사의 지위를 높이는데 공한한 사람이 프랑스의 루이 14세이다. 샤를 프랑수아 펠릭스라는 외과의사가 루이 14세의 치질을 수술하여 완치시키면서 내외과 차별이 없어졌다.


이렇게 외과의사와 수술이 일반화 되면서 의과대학에서는 카데바를 놓고 공개강의하게 되었고 렘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같은 명화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발전하게 된 해부학 기술 덕분에 의학 기술은 발전하게 되었고, 그 혜택을 입는 우리는 모두 카데바에게 빚을 지고 있다.

램브란트의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2. 유럽의 근간을 송두리째 바꾼 대재앙, 페스트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페스트’이다. 1347~1351년 불과 4~5년 사이 유럽 전체 인구의 30~50%가 목숨을 잃었다. 페스트에 걸리면 하루 이틀만에 사망했고, 간, 폐, 피부 등에 출혈성 괴사가 나타나면서 마치 검게 썩은 것처럼 보이기에 흑사병으로 불린다.


20세기 후반 항생제가 보급되며 종적을 감춘 듯이 보이지만 아직 인류가 완전히 퇴치하지 못한 질병이다. 조스 피레렝스가 그린 <역병 희생자를 위해 탄원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에서는 사람들이 속절없이 쓰러지는 상황이 일상이 되다보니 무표정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 위쪽에는 온 몸에 화살에 꽂힌 남자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그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이다.

조스 피레렝스 <역병 희생자를 위해 탄원하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3. 의술과 인술 사이


파블로 피카소가 15살에 그린 <과학과 자비>에서는 의사와 수녀가 임종을 앞둔 젊은 여인을 돌보고 있다. 소생할 가망이 없는 듯 여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다. 환자의 맥을 짚고 맥박시계를 보는 의사는 ‘과학’을, 아기를 안고 병자에게 물을 주는 수녀는 ‘자비’를 상징한다. 정상인의 심장 박동수는 분당 60~80회이나 아마도 이 환자의 맥박은 빠를 것이다. 아마도 폐렵 감틍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38도 이상 고열이 나는 환자였을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 <과학과 자비>



4. 제1차 세계대전의 승자, 스페인 독감


14세기 유럽인구의 30~50%가 사망한 페스트 이후 1918년 3월부터 1920년 6월까지 스페인 독감으로 유럽은 또 다시 최악의 대재앙이 덮쳤다. 당시 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사람이 1500만명이었는데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약 약 5천맘영에서 1억명 정도로 추정된다고한다. 그 때 유럽 인구는 약16억, 스페인독감에 걸린 사람은 약 6억명이었다. 


에곤 실레는 아내가 임신을 하자 가족을 이룬다는 기쁨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까지 그려가며 <가족>을 완성했다. 실레의 작품 중에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는 건 이 그림이 유일하다. 그러나 당시 엄청나게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에 아내 에디트가 감염되면서, 실레는 아내와 배속의 아이까지 함께 잃고 만다. 그리고 아내가 사망한지 3일만에 실레도 사망하면서, 그가 그린 가족의 모습은 끝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지니 못한다.


스페인 독감은 특이하게도 2~30대의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맹위를 떨쳤다. ‘사이토카인 폭풍‘이라는 것으로 사이토카인은 세포 간에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물질이다. 몸에 외부 침입자가 들어오면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 면역세포들끼리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이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 사이토카인이 과분비되면 오히려 신체조직을 파괴해 정상세포에 해를 입히게 된다. 2015년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도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사망한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에곤 실레 <가족>


뭉크는 어려서부터 병약했고 평생 천식과 신경쇠약, 정신분열증 등 질병에 시달렸으나 스페인 독감을 이겨냈다. 사람들은 그도 고흐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할 거라 짐작했으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며 여든 살 넘게 살았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다 살아난 뭉크, 얼굴은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모습이다.

에드바르 뭉크 <스페인 독감을 앓은 후의 자화상>


5. 어둠속에서 사는 사람들


피테르 브뢰헬은 농민이나 걸인, 장애인 등을 주인공으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풍속화를 그린 화가이다. 그의 <맹인을 이끄는 맹인>은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는 구절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인도하는 기막힌 현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지도자와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이끌려 가는 식민지 네덜란드를 가리킨다.

피테르 브뢰헬 <맹인을 이끄는 맹인>


하늘은 어두운 빛으로 가득 차 있고, 붕대로 눈을 동여맨 여인이 커다란 구 위에 불안정하게 앉아 있다. 그녀가 움켜쥐고 있는 악기에는 현이 딱 하나 남아 있다. 여인은 한줄 남은 현으로 악기를 연주하려 애쓰고 있다. 지독한 상실감과 고통이 느껴지는 조지 프레드릭 와츠의 작품 <희망>은 그리스로마 신화 ‘판도라의 상자’에서 모티브를 빌려왔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때, 시가, 청각, 후가,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이용한다. 그 중 70~80%의 정보는 시각을 통해 얻는다. 이런 세상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장애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조지 프레드릭 와츠 <희망>



6. 숨을 멎게하는 매혹, 스탕달 신드롬


베아트리체 첸치는 부유한 귀족의 딸로 태어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베아트리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골의 작은 성에 그녀를 가두고 겁탈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베아트리체는 계모와 오빠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교회에 고발했으나 막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아버지 프란체스코의 편을 들었다. 가족들은 힘을 합해 프란체스코를 살해하고 사고사로 위장했으나 교황은 사고사를 믿지않고 가족 모두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민중들은 베아트리체의 딱한 사정에 판결이 부당하다고 항의했으나 프란체스코의 재산에 눈독들인 교황은 결국 가족 모두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림은 형 집행을 눈앞에 둔 베아트리체의 모습이다. 헐렁한 옷 위로 아름답고 가냘픈 소녀의 얼굴.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눈에는 분노도 슬픔도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다. 


100년도 더 세월이 흘러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은 감상평을 남겼는데 "산타 크로체 교회를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아름다움의 절정에 빠져 있다가 천상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것들이 살아 일어나듯이 내 영혼에 말을 건넸다." 그는 일주일 넘도록 그런 기분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 후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이름붙였다. 


반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작품 앞에 서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파괴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1991년 한 남성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의 발을 망치로 내려쳤고 그래서 이런 심리를 '다비드신드롬'이라 이름붙였다고 한다.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7.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메아리, 에코


아름다운 에코는 원래 엄청난 수다쟁이 님프였는데 헤라의 미움을 사게 되어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그리고 겨우 다른 사람의 말의 마지막 소절만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어느날 아름다운 나르키소스를 만난 에코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마침 나르키소스가 길을 물었다. 그러나 겨우 마지막 소절만 되풀이 할 뿐 에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정신나간 여자라고 생각한 나르키소스는 에코에게서 도암간다. 에코는 슬픔에 잠겨 동굴 속으로 숨어 야위어 가다가 결국 형체도 없어지고 목소리만 남았다는 슬픈 이야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에코와 나르키소스>

알렉상드로 카바넬 <에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입니다. 명화는 의학에 뜨거운 온기를 불어 넣습니다. 이 책은 의학의 주요 분기점들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명화라는 매력적인 이야기꾼의 입을 빌려 의학을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려 노력합니다.”


이 랙을 읽고 나면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들의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의학적 상식도 얻고 의학적 관점에서 명화를 해석하는 방법도 알게 되기에, 그림을 사랑하는 미술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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