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볼셰비키>
[명화와 역사] 29, 러시아 11월혁명과 볼셰비키
“20세기 역사는 러시아혁명 없이 이해될 수 없다”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고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동서냉전의 시대를 겪은 20세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에 그럴 것이다.
1914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암살을 계기로 발생한 1차 세계대전은 장기전으로 돌입함으로써 군수물자를 대기 위하여 참전국들은 모두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1917년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독일 혼자 버텨온 동맹국들은 불리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독일과 강화조약을 맺으며 연합군 측에서 빠지면서 독일은 서부전선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독일에서도 내부 혁명이 일어나 결국 1918년 11월 11일 항복하면서 1차세계대전은 끝나게 된다.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에서는 1905년 1차 러시아 혁명이후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경제가 파탄나도록 방치하면서, 민심은 이반되고 권력 내부에서는 암투가 횡행하게 된다. 1차대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600만의 대군을 동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경제가 파탄되는데도, 차르 니콜라이 2세는 무눙하기 그지 없었다. 차르 뒤에는 드세고 편협한 황후 알렉산드락 있었고, 또 황후 뒤에는 그녀가 신처럼 떠받드는 요승 라스푸틴이 있었다.
원래 시베리아 농민 출신의 라스푸틴은 수도원을 떠도는 돌중이었다. 그는 최면술을 이용하여 신흥종교를 만들었고 귀부인들 사이에서 많은 신도를 얻게 되면서 마침내 황후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국정을 쥐고 흔드는 비선실세의 위치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황후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그녀의 아들 알렉세이를 괴롭히던 혈우병을 그의 최면술로 치유하면서 부터였다. 그러나 1916년 그의 국정농단을 보다못한 세력에 의해 라스푸틴은 암살되고 만다.
그리고 1차대전에서 러시아가 패전을 거듭하고, 국내에는 식량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황실의 무능이 극에 달하자 1917년 3월에는 노동자, 농민, 병사들이 자신들의 대표기관인 소비에트를 결성하여 왕궁으로 몰려들었다. 결국 니콜라이 2세와 그이 가족들은 쫒겨나 처형되고, 러시아 공화국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민중들의 염원과는 달리 전쟁을 계속하기로 결정하자, 해외망명에서 돌아온 레닌은 임시정부를 맹비난하게 되었고, 그의 지도 아래 볼셰비키의 ‘11월 혁명’이 일어나 임시정부도 무너지게 되었다. 새로운 혁명정부는 전쟁중지와 토지사유의 폐지를 선언하면서 ‘노동자, 농민의 정부’를 내세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러시아 이동파 근대화가 보리스 쿠스토디예프는 격동기 러시아에서 태어나 누구보다도 자신의 민족을 사랑했고 그런 러시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화가였다. 일리야 레핀의 제자였던 그는 러시아 혁명의 순간을 단호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결핵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상태였던 그는 작품속에서 그는 19세기 포퓰리즘 때부터 전승되어 오는 러시아 민족의 전통기법을 사용해 혁명의 열정을 표현했다. 붉은 깃발을 앞세운 볼셰비키 당원이 교회를 포함한 장애물들을 짓밟으면서 전진하고 있고, 그의 눈에는 ‘혁명’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보인다. 혁명의 위대함을 강렬하게 표현한 명작이다.
++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Kustodiev, 1878~1927), <볼셰비키 (Bolshevik)> (1920년), Oil on Canvas, 101×141 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 1905년 러시아 혁명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볼셰비키 혁명기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영화 ‘닥터 지바고’ (1965)
https://www.youtube.com/watch?v=UOQX7BDF3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