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삭 이스라엘, <마타하리> (1917)
[명화와 역사] 29, 1차대전 ③ 서부전선과 마타 하리
독일의 소설가 레마르크(1898~1970)이 발표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1차대전 당시 프랑스,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던 서부전선의 참혹한 모습을 현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1차대전에서는 이전의 전쟁과는 다른 인류 최초의 대량 살상전쟁의 양상이 벌어졌다. 새로운 신무기인 기관총, 독가스, 탱크, 전투기, 잠수함 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또한 종래의 전쟁의 양상이었던 대열행진이나 라인전투는 사라지고 참호전이라는 악몽같은 전투로 전환되었다.
참호전은 처음에는 기발한 착상의 독창적인 전술이었으며, 또한 엄청난 살육을 가져오는 전쟁방식이었다. 독일은 개전 초기 5주 동안 빼앗은 땅을 연합군의 반격으로 밀리게 되자, 전선을 고수하기로 결심하고 정교한 참호선과 지하통로를 구축하고 철조망 뒤에서 수비태세에 들어갔다. 양군 사이의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진격하는 연합군의 공격부대를 기관총의 조준사격으로 궤멸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입은 연합군도 결국 독일과 마찬가지로 참호를 파고 대치하게 되면서 장기전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수천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참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서부전선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17년 10월 15일 아침 파리 교외에서는 한 여인이 총살되었다. 총살 직전 눈가리개도 거부한 채 12명의 사수 앞에서 입고 있던 외투마저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총알을 받은 여인의 이름은 마타 하리(1876~1917)였다. 네덜란드 출신 무희였던 그녀의 죄목은 스파이 혐의였는데, 1차대전 중에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정보를 판 이중간첩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녀가 과연 스파이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본명이 마가리타 젤레였던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의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파산으로 어렵게 자랐다. 스무 살 즈음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주둔하던 네덜란드 장교의 구혼광고를 보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7년을 살았다. 그러나 이혼하고 파리로 돌아와 모델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인도네시아에서 배운 매우 선정적인 벨리 댄스를 한 클럽에서 선보이면서 유럽 사교계의 최대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으로, 자신을 자바섬 왕족과 네덜란드인 사이에서 태어난 인도네시아 공주라고 속이면서 그 유명세는 더욱 높아졌다.
당시 파리 최고의 클럽인 물랭루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무희가 되면서, 그녀는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대도시를 순회하며 매혹적인 댄서로서 유럽 정치를 쥐락펴락 하는 각국의 황태자, 수상, 장군 등 고위층들과 관계를 맺었다. 1차대전 직전 베를린에 머무르던 그녀는 전쟁 발발 직후 파리로 들어오려다가, 그녀를 감시하고 있던 영국 정보기관에 체포하여 프랑스 경찰에 인계되였다. 심문과정에서 그녀는 독일로부터 스파이 제의를 받고 2만마르크의 돈도 받았지만 스파이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녀의 말은 전시 상황에서 무시되었다. 수사과정에서 프랑스의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되자 프랑스 정부는 서둘러 재판을 진행하여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녀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때 전유럽을 들끓게 했던 뇌쇄적인 미모의 마타 하리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오늘날까지도 미모의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 이삭 이스라엘 (Issac Israel, 1865~1934), <마타하리 (Mata Hari)>, (1916), Oil on canvas, Kröller-Müller Museum, Netherlands
** 뮤지컬 ‘마타하리’
https://www.youtube.com/watch?v=A3wSEMSr5_U
+++ 전설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영화 ‘마타하리’ (1931)
https://www.youtube.com/watch?v=9Y6gXXWchU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