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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Feb 25. 2019

[명화와 역사] 26, 1차 세계대전과 사라예보 총성

- 오스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1914)

[명화와 역사] 26, 1차 세계대전과 사라예보 총성  (1914)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첫 번째 총알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두 번째 총알은 그의 부인인 황태자비 조피를 맞췄다. 이들의 저격범은 당시 세르비아의 극우 민족주의자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라는 18세 청년이었다. 그가 쏜 두 발의 총탄은 인류 역사상 인류가 경험한 최초의 대규모적인 세계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울리는 총성이었다. 이후 4년동안 벌어진 1차세계대전에서 약 천만명이 죽고 2천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사라예보 사건을 그린 삽화

원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조카였기에 황위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시씨 황후의 아들이었던 루돌프 황태자가 1889년 그의 연인이었던 마리아와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황실의 격식을 싫어하고 여행을 주로 다닌 어머니 시씨황후로부터의 애정을 못받은 루돌프는 벨기에의 공주 스테파니와 결혼했지만 이 또한 애정없는 결혼생활로 관심을 잃어갔다. 그러던 중 사촌 라리쉬 백작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된 베체라 남작의 딸 마리를 보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루돌프 황태자
마리 베체라

사랑에 눈 먼 루돌프는 교황에게 정략결혼을 무효로 해달라는 탄원서까지 보냈으나, 오히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진노와 함께 마리와의 결별을 강요당하게 된다. 마리 베체라도 보통은 아니어서 궁정오페라가 있는 날이면 스테파니 황태자비의 맞은 편 좌석에 앉아서 도적적인 눈길을 보내기도 하고, 독일 대사관 파티에서 황태자비 입장식 때 다른 귀부인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데 그녀만 혼자 승리에 찬 미소를 보이며 꼿꼿이 서서 황태자비를 응시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대담한 행동은 황제를 격노케 했고, 이 소식을 들은 황태자는 그 다음날 황실 별장에서 마리를 먼저 권총으로 쏘고 본인도 자살하게 된다.     

총격 몇분전의 사진

루돌프 황태자의 사망으로 황위 계승권은 사촌이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에게 오게 된다. 그러나 그가 황실의 시녀이자 일개 보헤미아 백작 가문의 딸이었던 조피와 사랑에 빠지자 황실의 반대에 부딪쳤으나,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황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는 조건을 수용하고 귀천상혼의 결혼을 하였다. 그래서 당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는 황실에서도 대우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페르디난트 황태자 가족

당시 위험지역이었던 사라예보 방문도 그는 가고 싶지 않았으나 황제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당일 오전에 이미 한차례의 암살 시도가 실패하였고 수행원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황태자부부는 다친 수행원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가고자 했고, 또 다른 테러를 우려해 예정된 길이 아닌 지름길로 가기로 했는데 정작 운전기사에게는 전달하지 않아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또한 황태자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음에도 총알이 목을 관통하여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불운한 사람이었다.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화가인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린 <바람의 신부>는 전쟁으로 인한 아픈 개인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코코슈가의 연인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부인이었던 알마 말러였다. 그녀는 말러 사후에 또 다른 연인이었던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1차대전 발발이후 그로피우스가 참전해서 자리를 비우게 되자 이번에는 열혈청년이었던 코코슈카와 뜨거운 연애로 빈 예술계를 시끄럽게 달궜다. 그러나 둘의 연애는 짧았고, 그녀는 세 번째 남편인 극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코코슈카도 군대에 입대하여 전투중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제대하여 평생을 신경쇠약 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코코슈카가 알마와의 짧은 연애중에 그린 그의 대표작 <바람의 신부>는 그의 불안함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불안한 정세를 잘 표현하는 작품일 수 도 있다.     

++ 오스카 코코슈카 (Oscar Kokoschka, 1886~1980) <바람의 신부 (Bride of the wind)> (1914), 178 x 215 cm, oil on canvas, 스위스 바젤미술관     


** 구스타프 말러가 ‘비극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던 교향곡 6번은 그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불행을 예측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Eo1PsSm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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