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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Feb 09. 2019

[명화와 역사] 24, 피의 일요일과 제1차 러시아혁명

[명화와 역사] 24, 피의 일요일과 제1차 러시아혁명 (1905)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위상도 많이 하락하였다. 특히 로마노프왕조는 백성들에게 외면 받는 최악의 상황게 직면하게 되었다. 19세기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을 때 러시아는 영토 늘리는 데만 관심있는 뒤떨어진 나라였다. 그러나 러시아를 현대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 해방을 선언하면서 개혁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자유인이 된 농노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농민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못했다.  

   

이에 도시의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국민의 대부분인 농민들의 생각을 계몽하기 위하여 ‘브나로드(민중속으로)’ 운동을 전개하여 농민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체포되면서 실패로 끝나게 된다. 결국 알렉산드르 3세 때에 다시 러시아인들의 자유를 다시 빼앗고. 귀족들의 권한들 다시 높여주게 되고, 반대로 귀족들은 차르의 무한한 권력을 보장해주게 된다.     


그런데 러시아의 낙승이 예상되던 러일전쟁에서 패전하면서, 엄청난 전쟁비용과 기근, 폭등하는 식량 가격 때문에 러시아 국민들은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04년 12월 페테르부르크 프틸로프 금속 공장에서 해고된 4명의 노동자의 복직운동에서 시작된, 노동운동이 8시간 노동, 초과근무 폐지, 임금인상 등의 요구조건을 내건 커다란 파업으로 바뀌었다. 이는 1월이 되면서 페테르부르크시 전체가 파업에 들어가 11만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들은 1월 9일 니콜라이 2세에게 편지를 써서 차르가 직접 청원을 들어달라고 요청하게 되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사람들은 성당에 가는 대신 차르가 머물고 있는 겨울궁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평화적인 시위를 하고 있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리케이트와 무장한 군대였다. 행렬이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차르의 군대에 의한 피비린네 나는 사격이었다. 이른바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약 1천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3천명 이상이 다쳤다고 한다.      


당시 차르를 아버지나 하느님의 대리자로 생각하고 있던 순진한 러시아 인민들의 차르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리게 되었다. 이 소식은 전국으로 전파되었고 노동자들은 피로써 차르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다음 날 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와 군대의 무력충돌이 벌어졌고, 모스크바에서는 총파업이 벌어지면서, 항의 파업과 시위가 전국에 소용돌이 치게 되었다.      


1905년 10월에는 전 러시아 동맹파업으로 정부는 마비상태에 빠졌다. 이에  더 이상 기존의 체제를 고집할 수 없게 된 니콜라이 2세는 이른바 ‘10월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입법에 대한 황제의 독점적 권한이 제한되고 제헌의회의 창설을 약속하였으며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가 허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차르의 군대가 효과적인 진압작전을 펼치고, 혁명세력들의 내부 분열이 겹치면서 같은 해 12월 19일 종언을 고한다. 하지만 이로써 전제정치를 하던 로마노프 왕조는 붕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러시아의 이동파 화가 일리야 레핀은 사실성을 고수하면서도 전통주의를 철저히 배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혁명이 태동하던 무렵부터 행동하는 민중이 등장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나간 화가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당시 러시아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가난을 묘사했으며, 러시아의 사회적 긴장상태와 연관되어 있는 문제를 가감없이 묘사했다. 그의 작품 <1905년 10월 17일의 시위>를 통해서 시민에게 자유를 인정하고 의회를 선출하는 국정개선에 관한 차르의 성명을 들은 국민들의 열광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 일리아 레핀, <1905년 10월 17일의 시위 (Demonstration on 17 October, 1905)>, (1907~1911), 캔버스에 유채, 182.9×322.6cm, State Russian Museum, St. Petersburg,      

잉리야 레핀 자화상

**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1905년’은 바로 이 피의 일요일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2f9ZFNyH     


*** 1905년 오데사 할구에서 일어난 전함 포템킨호 반란 사건을 소재로 한 고전 영화 ‘전함 포템킨’ 중의 그 유명한 오데사 계단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bNg10Akv0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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