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고 너무 습해서 밖에 조금만 있어도 찝찝하다. 그나마 좋은 점 하나는 미세먼지가 없다는 점, 그것 말고는 계속되는 장마에 다들 죽을 맛인 것 같다. 이런 날씨 때문에 내가 무엇보다 가장 걱정인 건 나의 반려 식물들이다.
어느 날 보니 나의 반려 식물 중 하나인 꽃치자(애칭 다롱이)가 잎이 젖은 빨래처럼 축 처져있었다. 베란다에서 덥고 습한 날씨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바람도 햇빛도 못 받고, 더위와 습기만 잔뜩 먹은 것이다. 거기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에어컨 실외기까지 있다. 실외기 바람이 최대한 밖으로 바로 나가도록 칸막이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더운 날씨에 실외기 바람까지 나오면 반려 식물들이 더 더워진다. 그래서 나는 반려 식물들 때문에 에어컨도 최대한 잘 틀지 않는 편이다.
작년에도 그 아이 하나만 자꾸 더위를 먹었다. 작년 8월엔가 비가 전혀 안 오고 햇빛만 쨍쨍이며 무지하게 더운 날이 계속된 적이 있었는데, 얘가 더위를 먹어서 잎사귀가 아래쪽으로 축 처져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깜짝 놀라 시원한 물로 물 샤워를 시켜주고 선풍기를 한두 시간 쐬어주었었다. 그랬더니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잎사귀가 다시 싱싱하게 위로 올라와서 너무 신기해했던 적이 있다.
그랬던 아이가 올해는 비가 계속 내리는 4,5일 내내 그냥 베란다에 방치해 두었더니, 이제 거의 생사를 넘나드는 것 같은 수준으로 잎이 쳐지다 못해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만 실내로 가지고 들어왔다. 작년처럼 선풍기 바람 쬐어주고, 식물 등 쬐어주고 했는데도 다시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그저 식물일 뿐인데, 며칠째 축 처져 있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축 처져갔다. 얘가 이대로 무지개다리를 건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년 넘게 키우는 동안 보아온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햇빛을 잘 받으면 항상 제일 먼저 연두색 새잎을 뿅뿅 뽐내던 모습, 너무 좋아서 계속 킁킁대게 만들던 꽃향기, 여기저기로 가지를 뻗어나가면서 멋대로 자라서 수시로 가지치기를 해줬었던 기억.
결국 두고 보다 안 되겠기에 극약처방에 들어갔다. 시든 잎들이 다시 싱싱해질 수 없을 것 같아 전부 잘라줬다. 그리고 화장실로 옮겨서 시원한 물로 샤워시켜 주고 영양제를 주고 선풍기 바람을 쐬어주었다. 다시 건강하게 일어서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했지만, 사실 거의 반쯤 포기했다. 얘가 너무 매가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식물등이 켜지도록 타이머를 맞춰두고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 다롱이는 나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듯이 잎이 다시 위로 싱싱하게 올라와 있는 예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참 헛웃음이 나왔다. 너도 참 대견하구나. 그냥 잠시 풀이 죽어있을 뿐이구나. 요즘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 너도 같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을 뿐이었구나. 포기한 게 아니었구나.
맞다. 우린 좀 닮았지. 나도 축 처지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지는 때가 종종 있지. 그래도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잠 푹 자고 나면 다음날 어느 정도 다시 힘이 나더라. 사실 우리가 다시 생기가 돌기 위해서 뭐 대단하게 필요한 건 아니었다. 내가 식물을 잘 몰라서 얘가 아파도 뭐 어떻게 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냥 가장 기본적인 물, 바람, 햇빛만 잘 받을 수 있게 해 주면 되는 거였다. 내가 다시 힘이 나기 위해선 그냥 가장 기본적인 잘 먹고 잘 자기만 해도 되는 거였다.
가장 기본적인 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걸 반려 식물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런 꿉꿉한 날씨도 견디다 보면 또 햇빛 쨍쨍한 맑은 날이 오고 또 더 지나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도 올 테지. 오락가락하지만 결국 또 괜찮아질 것이다. 너도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