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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miverse Mar 17. 2023

J03-어쨌거나 왔으니까

도쿄에는 일단 잘 도착했습니다

정리를 한다. 단순히 일본으로 가는 짐을 싸는 것에 더해, 정말 필요한 것을 챙기고 혹시 필요할지 모를 것들을 ‘일단’ 챙겨두고, 당근에 판매할 것을 팔고, 언제든 돌아오면(그리고 누군가 오더라도) 깔끔한 방을 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쌓아온 짐들을 모두 한꺼번에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보이는 것과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잘 챙겨두자.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것과, '필요할지도 모를' 것들 중에서 우선순위의 물건들을 가져갈 캐리어에 챙겨두면, 남겨진 '필요할지 모를 것'들은 별도의 박스에 담아서 누가 온다거나 필요로 할 때 받을 수 있도록 해둔 뒤에, 마지막 밤을 여유롭게 둘러보면서 딱 한 잔 남은 위스키를 마시면서 출국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뭔가 두근두근하면서도 어쩌면 두려움도 있는 이 기분을 브런치에 잘 정리해 보자.




...는 언제까지나 희망이었고 의미 없는 망상이었다. 현실에서는 가져갈 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그나마 옷을 제외한 것들은 다행히 '필요한 것'과 '필요할지도 모를' 것으로 어느 정도는 챙겨두었기 때문에, 캐리어에 잘 밀어 넣으면 되었다. 그렇다. '옷을 제외'한 것이다. 물건들을 챙기면서 옷으로 잘 보호해서 싸야지-라는 생각이었지만- 역시나 이것도 언제까지나 희망이었고 망상이었다.


현실적으로는 어떻게든 몰아넣고, 구겨 넣고, 압축팩으로 부피를 줄이고, 캐리어를 온몸으로 눌러 담고-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이삿짐이 되다 보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다행인 것은, 오후 비행기라는 것. 결국 가능한 한 부치지 않으려 했던 EMS가 한 박스 생겼고, 출국 날 아침에 우체국이 문을 열자마자 바로 짐을 부쳤다. 물론, 당근에 판매할 것을 챙긴다거나 남겨진 위스키 한 잔의 여유 따위의 생각은 1초도 생각할 새 없이 시간이 흘렸다. 당연히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은 브런치의 ‘b’도 떠올리지 못했으니.


그래도 가벼워서 다행(?) + 온라인 예약으로 할인까지. 택시를 타고서야 약간의 긴장이 풀렸다.


다행히 이것저것 찾아보고 본 것은 많아서, 짐들에 문제 될 것들은 없었다. EMS를 부칠 때도, 캐리어를 공항에서 부칠 때도 무리 없이 통과. 짐의 개수는 많았지만, 내 캐리어는 추가 구매한 것(최대 23kg)까지 해서 2개가 20kg과 18kg. 게다가 추가로 다행인 것은 김포공항-하네다 편이라 인천공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가한 수속 절차.


문제는 보안검색이었다. 기내 캐리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워낙에 전자제품이 많고 배터리 내장 제품들을 다 백팩에 몰아둔 탓에 보안검색대에서 백팩을 거의 다 풀어서 X-ray 통과를 몇 차례, 간신히 통과가 되었다. 혹시 몰라 일찍 와서, 일찍 들어오기를 참 잘했다-싶었다는 생각과 함께, 땀이 뻘뻘 나는 민망함; (혹 전자제품류를 가져갈 일이 있다면, 보조배터리와 카메라 배터리 등의 별도 ‘배터리 팩’류는 대한항공 기준 5개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배터리 팩은 기기 안에 들어있으면 카운트가 안되므로, 최대한 카메라와 같은 기기 안에 넣어가면 카운트가 안됩니다! 저도 요렇게 해서 통과…(…))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
뭔가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채로




도쿄에 도착해서 다음 문제는 수화물로 부쳤던 캐리어 2개와, 기내 캐리어 1개, (거의 캐리어 크기인) 백팩과 노트북 2개가 들어있는 쇼핑백을 들고 숙소까지 가는 것. (보안검색대에서 꺼내기 쉽도록 프라이탁 가방에 노트북 2개를 넣었었는데, 이래저래 여권 등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이 또 있어 면세점에서 가장 큰 쇼핑백을 받아 몰아넣었었다. 그나마 이 마저도 딱 탑승전 손잡이가 끊어져서 긴급하게 다시 얻어다가 새로 넣었는데, 이 쇼핑백은 딱 숙소에서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또 끊어졌다)


짐 때문에 오죽하면 택시를 타고 갈까- 싶었지만 검색해 보니 가격이 6500엔 전후 수준. 공항 내에서는 카트에 올려 끌고 다녀서 다행이었는데, 숙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전철을 타고 가서, 한 10여분을 걸어가서 환승을 한 뒤에 또 10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Welcome to Tokyo, 도쿄타워를 보면서 택시에 짐을 한가득 싣고 숙소로 가는 길.


그래도, 운은 따라 준다고 해야 할까, 다행히 타야 하는 케이큐(京急)는 공항 카트를 플랫폼까지 가져갈 수 있었고, 내 결정은 케이큐를 타고 중간의 환승역까지 가서 그곳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었다. 검색에 나오는 예상 가격은 1300엔 수준. 이 정도면(!) 실제로는 1800엔 나옴




그렇게 숙소에 도착을 했고, 오늘은 3월 16일.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그 사이, 많은 일을 했지만 큰 일(?)은 없었다. 도착 다음 날, 3월 10일, 바로 숙소(레지던스)가 있는 미나토구(港区)에 거주 등록을 했고, 그날 바로 은행 계좌 개설과 신용카드 신청을 했으며, 회사에 들어가 온갖 장비 설정과 계정 설정을 마친 것이 가장 큰 일이고 정신없었던 일이랄까.


첫 주말의 토요일에는 스마트폰 요금제를 실제로 확인할 겸(온라인으로는 이미 알아봄) + 다이소를 들르기 위해 아키하바라를 다녀왔고, 일요일에는 집에서 늘어지다 하라주쿠에 또 다른 다이소 방문과 함께 잠시 온갖 문 닫은 가게들을 구경을 한 것 외에는, 일주일 간 마트에서 시장을 봐온 것과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로 밥을 해 먹었다. 점심은 푸드 트럭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고.


그리고 그 일주일 사이에 좀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1. 그 사이 출발일에 부친 EMS가 도착했다는 것(일요일에도 EMS 배송을 하더란)

2. 도착 다음 날 계좌와 함께 신청한 신용카드도 발급 승인이 되었다는 것(역시나 한도는…)

3. UR(공공임대 주택...이라고 해야 할까, 꽤 괜찮은 집을 '그나마' 괜찮은 가격에 빌려주는 곳)에 스윽 다녀왔다는 것

...정도일까. 그 외엔 내내 사무실에서 온갖 교육과 미팅 참여를 했다. 집과 회사, 그리고 회사와 집을 오가는 생활.


거주 등록도 하고, 은행 계좌 & 신용카드도 만들고, 밥도 해먹고, UR도 다녀와봤다.




그래서, 이 일주일은 어떤 일주일이었을까.


실은 아직 잘 모르겠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보다 그냥 하나하나씩 늘어놓으면-

회사는 당연히 적응 중이다. 일본에 있지만 외국계라서 그런 것일까, 분위기는 꽤나 자유롭지만 스스로 알아서 ‘잘’ 해야 하는 분위기. 아직 교육과 적응 기간이라, 도서관에 온 것처럼 다양한 시스템 활용과 자료들을 보면서 공부(?) 중.

짐을 따로 정리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4주(이제 3주!) 뒤에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캐리어와 박스를 펴 놓은 채로, 필요한 것을 꺼내 쓰듯 생활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안정’된 느낌이 들지 않아 대강이라도 정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

나름 잘 챙겼다고 생각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옷을 빼고’ 챙기다 보니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옷도 그냥 대충 막 가져온 것 같고, 필요한 몇몇 가지(특히 충전 케이블?)를 안 챙겨 온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안 챙긴 건 또 아니고… 뭐가 없는 건지, 부족한 지 조차 잘 모르겠…)

‘안정감’이 덜 들어서일까, 아니면 돌아갈 기한이 없다는 은연 중의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COVID-19의 시간 동안 변화한 것 혹은 마스크를 쓰게 된 것 때문일까- 항상 일본에 여행을 왔을 때의 ‘일본 느낌’이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냄새(?), 이전에는 맛있다고 느꼈던 맥주, 음식의 맛까지. 정말 가끔 느끼긴 하지만, 이전과 같지는 않다.

난생처음 노트북에 물을 쏟았다. 직통으로 키보드에. 이 글도 도착한 날부터 쓰고는 싶었지만, 물이 쏟아진 맥북프로를 완전히 말리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아이패드가 노트북의 역할을 해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글은 랩탑으로 써야지…? (…라고 핑계를 대본다)


도쿄가 맞나요…?




이렇게 도쿄라는 곳에 온 지 일주일이 흘렀다. 잘 적응한 걸까, 잘은 모르겠다. 보통 ‘두뇌의 언어전환’이 빠르면 2~3일 만에 이뤄지는데, 아직 그 ‘언어전환’이 아직 덜 된 느낌이다. 영어와 일본어를 쓰면서 일하는 한국인. 그것이 지금의 내 상황이다 보니, 영어도, 일본어도, 거기에 한국어까지 이도저도 아닌 듯한 느낌. 이에 더해, 빠르게 적응을 하기 위해 온갖 시스템과 구조, 주어진 교육 과정까지 빡빡하게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 나면 늘어지기 십상이다. 어쩌면 물을 쏟은 랩탑을 핑계로, 이 글도 쓰고자 하는 마음을 그냥 뒤로 젖혀두었던 것일지도. 같은 맥락으로 짐의 정리라던가, 아직 도쿄라는 곳의 ‘신선함’이 남아있을 때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막연하게 미루고 있는 것일 것이다.


게다 이상기온이라고는 하지만(아니 3월인데 막 20도 넘게 올라가고요…?) 환절기 탓이라 온도 변화가 심한 가운데, 일본 입국에서의 피곤함, 갑작스러운 생활 변화에 대한 피곤함, 하루하루 급작스런 두뇌 노동의 피곤함…이런 것들이 겹친 탓인지, 오늘은 몸 컨디션조차 좋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고 늘어지고, 침잠한 느낌. 출장 혹은 여행이 끝나 이제 다시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까지. 일본 온 지 한 3년은 된 거 같은 느낌이랄까.




도쿄는 3월 14일, 공식으로 벚꽃의 개화를 선언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지표가 되는 나무에서 몇 개(5개?) 이상 피면 선언을 한다고)  어쨌거나 내가 선택을 해서 왔고, 당분간은 이곳에서 나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아직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좀 더 안정적인 ‘내 집’을 찾아야 하고, 지금 레지던스 기간이 종료되면 이사도 해야 한다. 아마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가게 되면, 더욱 정신없어질 수도 있겠지.


개화를 선언한 벚꽃처럼,
나도 도쿄에서의 삶을 잘 ‘개화’시켜야겠다.


지금까지의 이런 늘어짐, 게으름을 접어두고, 뭔가 부지런하게. 오늘 회사가 끝나고, 드디어 ‘외식’을 했다. 좋아하는 라멘집에서 네기김치라멘에, 밥에, 교자까지 한 상 + 맥주 한 잔. 그리고 주말에는, 좀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여기저기 다니고, 구경도 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해야겠다. 아, 오늘은 금요일지만- 일단 정리부터. 어쨌거나, 잘 살아야겠다.


참, 혹 도쿄에 오실 분이 있다면- 저를 아는 지인이든 아니든, 연락을 주세요 :-)

외국에서의 삶은, 항상 사람이 - 특히 같은 한국 사람이 - 그리운 삶이랍니다!


사무실의 회의실에서 보이는 뷰가 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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